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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순 Dec 27. 2022

[수줍은 사찰 산책] 저절로 닿은 절2

삼각산 화계사


  북한산 둘레길을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자연스레 화계사에 닿게 됩니다. 현재 이 길은 신도들을 위한 길이라고 합니다. 표지판은 우회로를 추천하지만 목적지가 화계사라면 직진하셔야 합니다. 눈이 와서 이뻤습니다만 걷기엔 꽤 힘이 들었습니다.

  화계사를 갈 때마다 찾는 곳은 언덕 위에 보이는 '미륵전'입니다. 보통, 이름 있는 절에는 이름난 불상들과 후불도(불상 뒤에 있는 벽화)들이 꽤 있습니다. 웬만한 건 문화재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지요. 대부분 사찰 안에 모셔져 있기에, 아직까지는 들어가기가 조심스럽니다.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들어가 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어 댈 자신은 없어서 가만히 바라만 보다 나오곤 합니다. '산책은 밖에서 하는 것이지요. 탐방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소심한 마음을 애써 감춰 봅니다. 

  불상은 크게 '부처상'과 '보살상'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부처는 '온전히 깨달은 자', '감정까지 완전히 끊어진 자'를 말하고, 보살은 '깨달았지만 감정을 가진 자', '깨달았지만 현생에 머무르는 자', '깨달음을 위해 수행 중인 자' 등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 두 불상의 가장 쉬운 구별법은 헤어스타일이라고 하는데, 파마머리는 '부처상'이고 파마머리가 아닌 것은 대부분 '보살상'이라고 합니다. 세세한 구별법은 조만간 올릴까 합니다. 기본적인 몇 가지 구별법만 알아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해집니다.

  미륵전에는 당연하게도 미륵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미륵은 '미래에 오실 부처'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부처가 되지 않는 '보살'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미륵불의 경우는 특별히 '부처'로도 '보살'로도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헤어스타일은 '보살'입니다만, 이 불상은 영락없는 '부처상'입니다. '슈레딩거의 고양이' 같은 포지셔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륵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또한 다음에 한 번 올려보겠습니다. 풀어내고픈 얘기는 끝도 없는데 글재주가 못 따라줘 마음만 고생입니다.

  사실, 화계사 미륵전이 저에게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대칭'입니다. 특히, 좌우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대칭의 기본 축'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와 포즈들이 선사하는 '대칭의 변주'를 뜯어보는 재미가 남다릅니다. 저런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줄 아는 누군가의 '눈썰미'와 '손재주'가 새삼 부러워집니다. 

  미륵전에서 찾을 수 있는 두 가지 보물을 숨겨놓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미륵불상 뒤에 보이는 세계의 다양한 불상들입니다. 인도,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 나라마다 고유한 특색을 지닌 불상들과 우리의 불상을 견주어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두 번째는 미륵전을 등지고 돌아서서 사찰의 전경을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사찰은 아주 오래전부터 산에 자리를 잡아왔습니다. 경쟁률이 없을 때이니만큼, 당연히 터가 좋은 곳을 잡았겠지요. 그렇기에, 웬만한 한옥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뷰를 자랑합니다. 따뜻한 커피 보온병에 챙겨 홀짝홀짝 마시며 전경을 감상하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게다가, 돈도 들지 않지요. 제가 사찰산책을 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기미는 보입니다만 아직 대머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화계사의 '백미'라고 꼽을 수 있는 곳은 바로 미륵전에서 대웅전 쪽으로 내려가는 사잇길입니다. 열댓 발자국 정도의 거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별천지입니다. 언제 만들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각양각색의 작디작은 불상들이 일렬로 쭈욱 반깁니다. 여기서만큼은 글로 설명할 재주가 없어, 쭈그리고 앉아 찰칵찰칵 폰을 눌러댔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의 얼굴생김새보다 표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이를 먹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표정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은 '얼'이 깃들고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잔주름 하나까지 자신의 감정으로 표현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 부러울 수 없습니다. 불상을 보다 보니 보는 눈도 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단아하고 자애로운 부처의 표정에서부터, 폭소를 터트리는 포대화상의 표정까지. 불상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저의 표정도 닮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표정 좋은 얼굴을 갖고 싶다. 이것이 저의 기복이라면 기복입니다.

  처마에 눈은 녹지 않았고, 햇살은 강했습니다. 덕분에 이날 화계사는 지붕과 하늘 맛집이었습니다. 이때다 싶어 연신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사진이 자꾸 어둡게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핸드폰이 구형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 눈이 어두워진 건가 살짝 걱정이 일었습니다. 아, 알고 보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참새 방앗간이라고 하지요. 사찰에 들리면 꼭 기념품 파는 곳을 기웃거립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한 두 개 들고 옵니다. 화계사에서는 요 아기불상을 사들고 왔습니다. 빛을 받으면 머리를 끄덕입니다. 너무 격하게 끄덕이기에, 끄덕일 때마다 "딱, 딱" 소리가 나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머리로 치는 목탁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스피커 옆에서 고장 난 메트로놈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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