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부끄럽습니다. 한동안 글을 못 썼습니다. 일이 바쁘지도 않았습니다. '왜 쓰지를 못하니?' 더듬더듬 짚어봤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한동안 독감도 앓았고, 읽어내야 할 책도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를 꼽아보면 역시나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 '쓴다'라는 행위는 머릿속 떠다니는 '비물질'을 손을 통하여 '물질화'시키는 작업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글쓰기에 가장 큰 허들은 '잘'이야~라고 너스레를 떤 적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허들에 딱 맞닥뜨려 버린 겁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잘 쓰고 싶은 허들'에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했습니다. 맞습니다. 미련했습니다.
간만에 '길상사'에 왔습니다. '명소'에 가까운 '사찰'인지라, 평소에 잘 찾지 않습니다. 그래도 굳이 찾은 까닭은 얼마 전부터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조각가 '최종태'입니다. 이곳에는 여느 불상과는 다른 미끈하고, 얄상한 몸매를 지닌, 너무도 유명한 '관음상'이 있습니다. 어딘가 동양스럽지 못한 자태에, 여성성이 도드라지는 얼굴생김새를 보면 '불상'보다는 '성모상'에 가까워 보입니다. 익히 알려져 있지만, 최종태 작가는 수많은 '성모상'을 제작해 왔다고 하지요. '관세음보살상'을 제작할 때 자매같이 닮은 '성모상'도 함께 제작했다고 합니다. '성모상'은 혜화동 성당에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최종태 작가님 또한 카톨릭 신자가 되기 이전에, '금강경' 공부를 하셨다고 인터뷰에서 들었습니다. '불교'에서 '천주교'로 옮기신 이유는, 자신이 터를 잡은 곳에서 깊이 있는 '불경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아서, 공부할 곳을 찾고 찾다가 천주교를 택하셨다고 합니다. '종교'를 찾지 않고 '진리'를 찾는 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최종태 개인전 '새벽의 노래' @갤러리 가나아트 나인원
최종태 작가의 작품을 보면 '누이'가 떠오릅니다. 사실, 전 '누이'가 없습니다. 없는데 그리운 존재가 있다면, 저에겐 '누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하면 낳아 준 '엄마'가 떠오르지만, '누이'하면 최종태의 작품이 떠오를 듯합니다. '누이'가 없기에 '누이'의 이미지를 책으로 배웠습니다. 아마 '이원수 동화작가'가 쓴 '꽃불과 별'일 겁니다.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동화집 중 누나가 몇 등장했을 겁니다. 치근덕 대는 동생 얼레 주고, 제 먹을 몫의 간식도 떼어주고, 추운 날에는 손을 잡아 호호 불어주고,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런 동화 속 '누이' 말입니다. 그 '누이'를 최종태 작가가 대신 그려주고 빚어준 듯싶습니다. 물론, 현실 '누이'와는 다를 겁니다. 악다구니 같은 세상에 그런 '누이'는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작가의 작품을 '종교적'이라고 하나 봅니다. 이 나이를 먹어도, 꼬부랑 할애비가 되어도 이 '누이'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을 듯합니다. 달덩이처럼 둥글고, 골똘한 듯 말간 표정, 부처님의 표정같이 닮고 싶은 표정리스트에 올리고 싶습니다.
아흔이 넘은 작가님의 목표는 한결같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닦아내고담아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빚어내는 작가의 그 마음을 훔치고 싶습니다. '잘 쓸 생각' 버리고, 온전히 '나'를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부끄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