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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순 Mar 06. 2023

'크로스'가 '끝'나고 난 뒤

[수줍은 표지 산책]

볼링&랑팡 / 플룻과 재즈피아노를 위한 트리오 모음곡



'크로스 오버'라는 장르가 있다

일종의 음악적 '이종교배'다

그래서인지,

이 자켓의 비주얼 컨셉은

누가 봐도 '교배 직후'다

어느 밴드명처럼

'Cigarettes after Sex*'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차원적인 게 딱 내 취향이다


저잣거리의 재즈피아노와

콘서트홀의 클래식 플룻이 눈이 맞았다

맞다 못해 야반도주라도 한 모양이다

미처 닫지 못한 조촐한 여행가방으로 미루어 볼 때

교외의 한적한 모텔 정도에 급하게 짐을 푼 듯하다


낯선 장소에서 불붙은 서로를 

격렬하게 크로스한 후(Cross-Over!)

침대에 기대어 나른하고 노곤하며

약간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는 중일 게다


'좋은데, 그렇다고 이렇게 평생 살 수는 없는 거 아냐?'


호기 있게 도넛을 만들어 뱉고 있지만

재떨이에 장초를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플룻은 지금 담배를 즐기고 있지 않다

눈을 내리깔고 뭔가 골똘해 보이는

피아노 또한 달라 보이지 않다


영화 '졸업'에서

결혼식을 박차고 달려 나간

벤자민과 엘라인의 서너 시간 후가 

이렇지는 않았을까?


'일탈'도 언젠가 '일상'이 된다면

이 둘은 지금 가장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놓여 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살 것인가

탈영토화로 한 걸음 내딛는

'방랑자의 시선'으로 살 것인가


후문을 들어보니

플룻은 잘 모르겠으나

피아노만큼은

다양한 악기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며

크로스를 즐기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고 한다




*Cigarettes  after Sex : 미국 슈게이징 밴드. 관계 후의 덤덤한 기분을 표현하는 밴드라는 설명을 어디선가 읽은 듯하다. 한국에서는 '섹후땡'으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현타밴드'가 더 어울림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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