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숲지기의 '내 마음은 빨래 중' 에세이
건전지를 교체해 주세요. 배터리가 다 되었습니다.
‘엥??? 2주 전에 건전지를 갈았는데 벌써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도어락의 외침!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빠르게 건전지를 갈아 끼웠다.
며칠 전 도어락이 ‘배터리가 다 되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도 없이 소진되어 어렵게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식구들은 건전지를 교체하는 일에 기민하게 움직였다.
우리 아파트 도어락 가격이 60만원 정도 된다고 들은 신랑, 고비용을 들여 교체하느니
건전지를 수시로 교체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의견을 덧붙인 것도 현실을 수용하는데 한 몫 했다.
그 뒤, 도어락은 다시 자신의 소리를 내었다. 7일만이었다.
“건전지를 교체해 주세요. 배터리가 다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갈았는데 벌써?’
뭔가 문제가 있다 싶어 수리기사님을 불렀다.
인터폰 본체를 유심히 살펴보신 후 무언가 조립을 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건전지는 가실 필요 없어요. 업체에서 최초에 끼워드린 충전용 건전지는 인터폰 본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끼워 둔 보조역할이예요. 도어락은 건전지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본체(인터폰)의 전기로 작동되는 거라서… 인터폰 본체 전기회로에 문제가 있었던 거네요. 이 부문을 해결했으니 이제 잘 되실 겁니다."
수리 기사님이 다녀가신 후 신랑과 저는 서로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본체가 문제였네. 본체가…
도어락 건전지를 갈아주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었는데 우리도 참…
진작에 알아볼 걸 그랬다. 그치?
문득, 도어락의 시스템이 마음관리 시스템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도어락 건전지 같은 마음 건전지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친구와 수다를 떨며 일상의 애환을 털어놓기도 하고 간혹 술에 취해 현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기도 한다.
영화나 전시, 책은 어떤가? 내 영혼이 갈구하는 삶의 주제를 예술에 기대어 위로 받는 날도 적잖이 있었다.
달리기를 하거나 등산을 하면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일주일에 한번은 달리기를, 한달에 한두번은 산을 찾았다. 몸을 움직이면 그나마 살만하니까.
하지만 스트레스 자극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만큼만 찾아오지 않았다.
은행창구 번호표처럼 순번을 지켜 차례대로 찾아오면 좋으련만...쓰나미처럼 밀려오기도 했다.
친정 엄마가 허리 디스크로 몸이 아프셔서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자식은 진학 문제로 속을 섞이고
남편의 사업 마져 잘 안되는 상황에 놓이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분명 주말에 친구를 만나 위로 받고 좋아하는 문화생활을 했음에도 말이다.
위로 받기 위해 선택한 마음 건전지들은 모두 하루, 이틀 용이란 말인가?!
내면에서 아우성친다. ‘짧게는 그때 뿐인 건전지도 있어!!’ 라고.
이런 젠장!
죽는 날까지 이렇게 수시로 건전지를 갈아 끼우며 잠깐의 행복을 맛보는 것이 최선일까?
도대체 마음은 어떤 회로로 구성되어 있길래 이리도 짧게 평안에 머물렀다가 다시 불안 속으로
들어가는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널뛰기를 하던 어느 날,
신청해 놓았던 HD 행복연구소 소장님이신 조벽 교수의 회복탄력성 강의 내용이 귀에 쏙 들어왔다.
“여러분 스트레스 어떻게 푸세요? 그 방법은 효과가 얼마나 있나요?
(수강생들은 각자의 스트레스 해소법과 효과성을 이야기했다. 대답을 들으시고는,)
우리의 몸은 두가지 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외부 에너지와 내부 에너지.
내가 작을수록 외부자극에 영향을 받을 수 있죠.
소인이냐, 대인이냐 에 따라 외부영향이 크게 느껴 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외부 에너지에만 의존하면 내면의 에너지 그릇은 상대적으로 작아집니다.
폭식을 하거나 과음을 해야 지만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짝퉁 행복입니다. 수다 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벗어나지요. 그러나 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자신의 스트레스와 다시 맞닥뜨려야 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부정적 감정을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위에 긍정적 감정을 덧씌웁니다. 그러나 그 덧칠은 휘발성이 강해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 짝퉁 행복!
감정 덧칠을 해 놓고는 내 마음이 채워졌다고 착각하며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