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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Oct 16. 2021

불면일기(不眠日記)

21.10.16 세번째

1. 나이트루틴


코로나 이후, 루틴이랄 것이 사라져서 삶의 균형을 쉽게 잃어버리곤 했다. 코로나 2년차, 이제는(이제서야..?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나름 나만의 루틴을 작심삼일이라도 잊지 않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이 루틴이란 건 별거 없는데, 소소하게 지키는 내 자신을 칭찬해주기 위해 일상에 루틴이라는 단어를 멋대로 붙인다.


나이트루틴, 잠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의식적인 행위이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늦게 다녀오는 날이면 새벽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정 전에 끝내려고 노력한다. 씻고 스킨케어를 한다. 전부 이니스프리 제품에 아로마티카 오일까지가 나만의 케어루틴이다. 이후 강하나 스트레칭을 하고 최근 시작한 일인데, 레이지 선데이 모닝 향수를 베개에 칙-뿌린다. 그렇게 두고 짧은 일기를 쓴다. 그러고 책이나 영화를 읽다가 영 재미가 없으면 유튜브의 세계에 빠진다. 유튜브에 한 번 잘못 걸리면 큰일나니 되도록이면 노래 영상만 보려고 노력한다(노력은 종종 배신당하고는 한다).


예전에 친구가 준 인센스스틱을 피우는 것도 좋았다. 절 냄새를 사랑하는 편이므로, 내 방이 한 순간에 절이 되는 느낌이 좋았다. 새로 뜯은 인센스스틱이 향꽂이에 잘 안들어가서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이렇게 생각난 김에 조만간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시원한 맥주 한 캔도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즐기는 일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나쵸와 함께 먹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가볍게 맥주 한 캔이면 딱 좋은 것 같다. 최근 코로나 백신 접종을 위해 술을 멀리 했는데, 다음 주에 중요한 일 하나가 끝나면 나를 위해 맛있는 나쵸와 나쵸소스와 맥주 한 캔과 축배를 들어야지.   

 


2. 일기에 대한 일기


작년부터 작은 사이즈의 일기장을 쓰고 있다. 200% 만족이다.

예전에 사이즈에 따라 글을 쓰는 양이 달라지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쓰는 것도 중요하므로 일단 크게크게 쓰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스쳐지나가기는 하지만 글은 모르겠고, 일기장은 작은 사이즈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다이어리를 쓰기는 했지만 왠지 빈칸이 더 많아서 여백의 미를 강조할 뿐이었는데, 작은 일기장을 손에 넣은 이후로는 하루를 짧게라도 기록하게 되었다. 앞으로 작고 365일을 매일 기록할 수 있는 일기장을 넘기며 올해의 어디쯤 와있는지 가늠한다.

벌써 10월의 중순, 일기장은 앞보다 뒤가 홀쭉해졌다.


가끔 짧은 시를 쓰기도 한다. 오늘 글을 쓰다가 작년 일기장을 들춰보았는데, 이런 시가 적혀있었다.



20/12/08

나를 둘러싼 껍질이

나에 의해서 한겹씩 부서지고 있다


껍질은 사라지지 않고

내 발치에 쌓인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지나친다


또다른 누군가는

빗자루를 어디선가 들고와

껍질을 쓸어준다


-만져볼래?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버릴 수 없어

그것들을 그러모아

내 몸에 붙인다

붙여지지 않았다


2.

어떤 생각과 마음은 오랫동안 기억되는데,

대부분의 생각과 마음은 가볍게 나를 떠나간다.


이 날의 나는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


내 일기의 특징 중 하나. 좋은 일은 되도록 상세하게, 나쁜 일은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특히 후자의 일은 감정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나중에 보면 이 날 무슨 일이 있었더라? 하고 말아버린다.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하고 나쁜 일은 쉽게 잊고 싶은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일기를 항상 그런 식으로 적는다.


작년에는 연말에 일기장을 천천히 읽어보며 좋았던 부분을 모아보았다. 일 년 365일 중 기억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나 많다니, 가을에 풍족하게 수확을 마친 농부의 기분이었다. 작년과 올해 모두 그 어느 해보다도 쉽게 무기력해지거나 의욕을 잃었던 나를 희미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공부가 너무나도 하기 싫었던 고3 때는 초등학생용 귀여운 일기장을 들고 다녔다. 그러다 야자 시간에 잠이 오면 일기를 쓰고는 했는데, 그래서인지 존 흔적도 엄청 많고 친구들의 흔적도 남아있고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이 가득 적혀 있다. 고3때는 왜 그렇게 재밌는 일 투성이였을까? 일기장에 가득한 에피소드들은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일기장에 여전히 남아 나를 웃게 만들어준다.


누군가의 일기장은 나와는 달리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이 되어줄텐데,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일기장을 적고 싶지 않다. 고3시절의 일기장처럼 지금의 일기들도 나중에 펼쳐보았을 때, 그 때의 나에게 언제나 매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행복을 추구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고 싶다.


이 시간이 되면 머리가 아파오는데, 아마 얼른 자라는 신호겠지? 싶다. 이 두통을 견디다 없어지는 순간이 오면 잠은 글렀다고 보면 된다. 그런 의미로 얼른 마무리해보는 오늘의 불면일기.


마지막으로 오늘의 추천곡은요.


1.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어-WH3N ()

2. 포옹-세븐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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