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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Jan 30. 2022

불면일기(不眠日記)

22.01.30 열번째

새벽 다섯시 반.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약 한 시간 반 뒤에 일어나서 아르바이트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제대로 망한 것이 아닐까. 한 두 시간 전부터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억울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있어도 생각은 멈추지 않아서 그런걸까. 그래도 가만히 있는데 생각을 멈출 수는 없는데. 조용한 새벽이 다가오니 부지런한 이웃들의 소리가, 정확하게는 어느 곳의 물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는 자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데, 나는 하루를 마치지도 못한 채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


오늘 불면의 원인은 아무래도 요즘 재밌는 것들을 보느라 잠의 시간을 미루고 미루면서 새벽을 보낸 내 탓 아닐까 싶다.


1. 굿바이 웅, 연수, 지웅 그리고 그 해 우리는


뒤늦게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정주행했다.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이 드라마에서 잊지 않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 드라마의 오프닝/ 드라마의 오프닝을 매 회 스킵하지 않고 보았다. 여름과 청춘 푸름 그 자체인 오프닝…그 씬들만 보아도 행복해졌다.


- 엔딩 마지막 웅의 나레이션

“사람들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그 해가 있다고 해요. 그 기억으로 모든 해를 살아갈 만큼. 오래도록 소중한. 그리고 우리에게 그 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 16화 그리고 작가님의 인터뷰 일부

- (아마도) 1화 중 웅의 작업실을 훓고 지나가던 햇빛, 그 지나가던 흔적



혼자서 지웅이라는 인물에 감정이입을 제일 많이 해서 본 것 같다. 누군가를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좋아할 수 있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부분들을 포기하게 만든 엄마를 결국 용서할 수 있어? 이러면서…드라마 비하인드 인터뷰에서 지웅이가 드라마 속 관찰자의 자리에 서 있을 때보다 본인 삶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소식을 전해줄 때 정말 이 드라마가 내 안에서 끝난 기분이었다.


내 삶은 기나긴 장시처럼, 한 행 한 행 느리게 지어진다.


책 ‘시와 산책’의 나오는 문장 중 하나이다(지금 생각나는 대로 적은거라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그 해 우리는>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못하는 인물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삶을 사랑해가는 모습이 좋았다. 어떤 식으로 삶이 흘러가든지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니라 조금 돌아가더라도 옆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이 있고, 흘러가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일은 아마도 나 자신을 제일 아껴주는 일일 것이다.



2. 밤을 함께 지켜준 지브리 속 친구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 번 부수는(?) 중이다.


아직 <가구야 공주 이야기>, <바람이 분다>, <추억의 마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마저 봐야하지만 나의 최애 영화를 꼽아보자면


1. 천공의 성 라퓨타

2. 원령공주

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지 않을까 싶다.


라퓨타를 상상하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즐거운 일이고, 결국 인간을 용서하는 자연을 보는 일은 항상 경외감이 들고, 자연과 교감하는 나우시카의 세계는 흐릿한 와중에 또렷하다.


<귀를 기울이면>을 다시 보며 세이지와 시즈쿠의 무언가를 향햔 열정과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가 멋지다고 생각했고

<마루 밑 아리에티>의 마지막 장면들, 쇼우가 다시 생의 의지를 다지는 그리고 아리에티의 가족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기록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드는데, 여주-남주 관계 설정이 흥미롭다. 지브리의 여주는 대체로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가고 리더십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작품 세계관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인물로 드러나기도 한다.이 때 남주는 여주의 옆에서 조력자의 역할로 존재하는 편인데, 조력자인 남주의 존재감이 엄청나서 상대적으로 멋진 여성 인물의 면이 다 드러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 인물은 대체로 ‘성장캐’인 반면, 남성 인물은 ‘완벽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저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보다보면 지브리 작품이 과거에 나온 작품이 더 많은 만큼, 그 시대를 생각하면 미디어 콘텐츠에서 여성이 다뤄지던 고착화된 이미지를 벗어난 인물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기도 한 것 같다.


이렇게 주절주절 적어본 걸 모든 시리즈를 다 한 번씩 보면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찾아보는(지금은 시간 날 때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밤의 시간을 채우고, 어린 시절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한다.



3. 마지막으로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바로, 이자연 작가님의 ‘어제 그거 봤어?’.


마침 미디어/대중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동안 봐온 콘텐츠들을 돌아보며 다시-읽게 되었다.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에는 여성 인물들의 책상이 부재했고,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 속 여성들의 목소리가 단절될 때, 반대 성별의 목소리는 의견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나오지 못했던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남성 중심 문화에서 여성들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을 소개 받았다.

그렇게 수많은 밑줄과 소개된 프로그램 리스트를 얻었다.

(최근 유튜브 하말넘많의 운영자 두 분의 에세이도 꽤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


우와 삼십분 뒤에는 일어나야 하네…

<그 해 우리는> 속 웅이는 불면증이라 만날 못자던데 나도 하루 이렇게 날 샌다고 일상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겠지, 애써 위안을 해본다.


오늘의 추천곡

https://soundcloud.app.goo.gl/Z27fE8XCsrnnfuri7

오늘 자정 전에 발견한 노래인데, 지금 무한반복 중이다.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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