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전념하던 어느 날, 따르릉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돌도 안 지난 갓난쟁이를 돌보며 지내는 단조로운 나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사이는 전쟁과 평화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그래도 궤도를 벗어나지는 않아 그마저도 지구를 도는 달처럼 규칙적으로 느껴질 판이었다.
어떨 땐 이런 삶이 행복이지 뭐,
싶다가도 너저분한 집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렇게 현실과 타협하면 안 되는데…
이 놈의 저질 체력이 문제야, 아니 체력은 늙은 어미라 어쩔 수 없다. 포기할 건 포기하자.
그래도 명색이 잘 나가던 인테리어 에디터인데
정신줄을 놓지 말자…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오만가지 생각을 다 떠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핸드폰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잔잔하던 나의 삶에 돌을 던졌다. 후배의 전화였다. 선배 덕분에 승진했다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와~ 정말 정말 축하해! 너무 잘됐다~
축하는 진심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얼떨떨했다. 내가 오르지 못한 그 자리. 욕심 내면 가질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가 못 미덥고 두렵기도 해서 가까워지고 싶지 않던 자리였다. 출산 후, 야망으로 불타는 사회적 삶보다는 아기와 함께 하는 소박하고 다정한 하루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웬일, 그 전화 이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키보드 워리어로 살던 시절에는 가수면 상태에서도 일을 하며 글을 쓰며 치열하게 생활했는데 지금은 침대에 누워 웹소설이니 웹툰,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잠들지 않나. 그 전화는 에밀레종처럼 내 평화로운 오후에 멈추지 않고 아주 시끄러운 경종을 울려대고 있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 후배가 꿰찬 자리를 욕망했었던 것인지, 아닌지.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그래서 시작하는 것이다. 하루 몇 자라도 다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나는 문장의 힘을 믿는다. 흰 여백을 채우는 검은 글자들이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내고 문장에 나의 의지가 담기면, 단순한 문장 한 줄이라 하더라도 가슴속 깊게 각인이 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에디터로 산 17년의 경험을 되짚어 보자면 글이란 이렇게 강렬한 한 방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