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식사라도 예쁘게 차린 테이블에서 먹고 싶어!
나는 집에 있는 가구 중 커다란 원형 테이블을 참 좋아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구처럼 유사시에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곳간에 채워두는 준비성은 없지만 갖고 싶은 <디자인 아이템>의 리스트를 상시 업데이트하는 인간이다. 태생이 인테리어 에디터인지라 매달의 기획회의-배당회의를 마치고 나면 리빙 숍으로 직접 시장조사를 다니는 것이 주 업무이기도 했고, ‘정말 돈 많이 주고 고친 집’이라거나 ‘훌륭한 취향을 가진 사람의 집’을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쇼핑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다. (위시 리스트는 특히 마감 기간에 수시로 업데이트가 되곤 했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에디터로 일하며 아름다운 비주얼만 쏙쏙 골라내는 훈련을 받은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블은 오랜 기간 마음을 확 사로잡는 디자인이 없어 지지부진 결정을 못하고 있다가, 해외 출장길에 묵었던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첫눈에 보고 사랑에 빠진 원형 테이블을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해외 직구가 요즘처럼 쉽지 않았던 때, 국내에서 팔지도 않는 테이블을 사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의 집요함이 만들어낸 무용담이기도 한데, 얘기가 길어지기도 하고 또 자세히 쓰고 싶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두겠다.)
오랫동안 만족하며 써온 나의 소중한 테이블은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짐짝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복층 빌라의 아래층에 있는 작은 거실에 테이블을 놓고 다이닝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푸르른 녹음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고, 좋아하는 LP를 골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생활은 감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꽤 호사스러운 나날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아기가 깨고, 새벽 수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소파가 2층에 있다는 것은 재난 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찰스&레이 임스의 흔들의자를 수유 의자로 사용하며 아기가 백일을 넘길 때까지 아름다운 다이닝 공간을 살려두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임스 부부의 디자인을 좋아하지만, 육아의 극한 상황과 맞닥뜨리니 솔직히 편하지 않은 의자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새벽마다 푹신한 소파가 간절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테이블과 소파의 위치를 맞바꿨지만, 나에게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하아… 울고 싶었다…)
아기를 낳고 새가슴이 된 우리 부부는 계단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식사 또한 2층에서 할 리가 만무했다. 남편이 싱글 시절에 유용하게 썼다는 접이식 탁자를 꺼내 들었다. 자취생들의 필수템인 접이식 탁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비하면 작디작았고 갑자기 바닥에 앉아 밥을 먹게 된 나는 입 안이 쓰디쓴 느낌이었다. 바닥이 어찌나 딱딱하던지 방석은 필수였다. 테이블이 없는 식사 시간은 슬프게도 몇 개월 지속되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