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두 번 이라고 대답한다.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 주변 친구들은 하나같이 궁금해하는 게 있다. 프로포즈.
나도 마찬가지다. 이제 곧 결혼하는 친구에게 프로포즈 받았냐며 물어보곤 한다. 이 시점에 우리 부부의 프로포즈 스토리에 대해 써볼까 한다.
만난지 6개월쯤 되었나. 처음 만나던 늦여름에서 봄이 다가오던 어느 날. 우리는 소개팅을 하던 날 갔던 연어육회 집에서, 첫 만난 날 그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창 대화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갑자기 까르띠*의 반지 얘기를 꺼냈다.
"이런 거 어때, 예쁘지 않아?"
"음...프로포즈 선물이야?"
장난으로 물었는데 선뜻 고민중이라고 대답하는 남자친구. 이를 어찌할꼬.
프로포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물도, 편지도 아니고 의외성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받았을 때의 그 감동. 그런데 남자친구는 이미 프로포즈 전부터 내 기대를, 감동을 깨부쉈다.
그는 결혼을 정해두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나와 결혼해주겠니 라는 의미의 프로포즈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근데 왜 그랬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의 부모님과 첫만남으로 식사를 약속했는데 그 시기가 오기 전에 프로포즈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별 생각없이 식사 날짜를 당기는 것이 어떻겠냐 했고 그렇게 식사 일정은 생각한 날보다 한 달정도가 당겨졌다. 여기서 그의 프로포즈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남자친구의 프로포즈 계획 얘기를 듣곤 실망감을 크게 내비치진 않았지만 그런 건 먼저 얘길 꺼내는 게 아니라며 툭-. 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의 부모님을 처음 뵌 날, 나는 그의 아버지에게 프로포즈를 받았다.
만연한 봄이오자 그의 부모님을 뵙는 날이 금방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활어회 코스가 나오는 그 곳에서 처음 뵙는 그의 부모님은 나를 무척 예뻐해주셨다. "우리 집으로 시집오렴. 내가 잘 해줄테니". 그의 아버지는 나에게 그 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 뵙는 날 말이다. 그의 프로포즈 계획은 실현되지 못한 채 그의 부모님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받은 것이다. (허허)
그럼 도대체 그한테 언제 프로포즈를 받은거냐고?
그의 부모님(이젠 나의 시부모님)을 뵙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우리는 부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지라고만 생각하고 갔던 여행인 데 부산에서 프로포즈를 받을 줄이야. 이 때 나는 예상치 못했다. 1차 프로포즈가 부산에서 이뤄질 거라는 것을.
도착한 날에는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빗 속에서 작은 우산 하나를 나눠쓰고 유명한 떡볶이집 대기 줄을 30분 넘게 기다리곤 겨우 떡볶이 한 접시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잠시 쉬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 전해주려고 뭘 가져왔다며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고 했다. 글로 쓰니 전개상 이상한 낌새를 느낄 법 한데 워낙 친한 친구이다보니 그 상황에서 그리 이상한 걸 느끼지 못했다. 출발한 지 두어시간 지났을 까 그가 돌아왔다. 그리곤 저녁을 먹으러 가자기에 냉큼 따라 나섰다.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우리는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호텔 문을 열자 꽃과 함께 내가 갖고싶어하던 인형, 그리고 티파니의 민트박스가 놓여있었다. 3초간 어리둥절해하다 "이게 뭐야~?" 라는 내 물음에 남자친구는 "풀어봐"라며 빙긋 웃었다. 그 곳에는 방금 내가 말한대로 꽃과 인형, 민트박스 그게 다였다. 민트박스를 풀어 목걸이를 바라보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물었다.
"결혼해줄래?(긁적긁적)"
쑥스럽게 주뼛거리며 나에게 묻는 남편을 보고 사실 속으로 이거 지금 진짜 프로포즈인가 싶었다. 나는 프로포즈를 특별히 원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프로포즈는 받고 싶지 않았다. 편지도 없었고 특별한 말도 없었다. 내가 바라 온 프로포즈는 사실 그냥 일상적인 순간에 너와 함께해서 행복하다, 앞으로도 평생 같이 살고 싶다는 그 메세지 하나 였는데. (바보)
어영부영 1차 프로포즈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뭐 갑자기 끝인가 싶지만 정말 이게 다 인걸...? 결혼해줄래라는 말에 차마 프로포즈가 맘에 안든다며 화를 낼 순 없으니 '응'이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그게 끝이다.
물론 그 날은 그게 끝이다. 그러나 이 것은 시작이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이 프로포즈를 분노에 마지않아 참지 못했다. 결국 며칠 후 나는 속상함에 펑펑 울음을 쏟고 말았다. 그가 자기 친구들에게 본인이 프로포즈한 이야기를 하자 왜 그리 엉망으로 했냐며 뭐라고 했다는 말에 설움이 폭발했다. 속도 없게 그런 얘기는 왜 하고 다니는 건지. 그리고 결국 나는 프로포즈를 다시 하라며 펑펑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하지만 평생 마음에 응어리로 남겨두느니 그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우는 모습에 그는 당황했고 다시 하겠다며 알겠다며 나를 어르고 달랬다.
근데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이 있고나서 두어달이 흘렀을까. 우리가 만난지 1주년이 되는 날. 그는 남산타워 꼭대기층에 레스토랑을 예약해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이 날 또 프로포즈를 할거라며 말을 꺼냈다.
말도 안돼.
그렇게 혼나고도 남자친구가 정신을 못차렸다. 나에게 그 날은 다시 프로포즈하는 날이라고 말을 하다니. 도무지 이 공대 남자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심보란 말인가.
그렇게 2차 프로포즈는 이미 벌어질 일임을 아는 채로 남산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웃기죠? 나도 웃겨요)
코스요리를 다 먹으니 케이크가 등장했다. 일명 결혼해줄래 케이크.
이 때도 남자친구는 또 주뼛거리며 "결혼해줄래?"라고 물었다. 이 날도 편지는 없었다. 왜 결혼이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일언반구도 없었다. 인셉션인가.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돌아가는 기분.
그런데 사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이 남자가 이렇게도 이 상황에 쑥쓰러워한다는 사실이. 이 공대 남자가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그래서 나는 "응 그래" 라고 답하며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참 사랑스런 순간들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프로포즈는 내 남편을 놀리는 건덕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