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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정 Nov 29. 2019

그렇게 아빠가 된다

내 남편이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은 뭉클했다.

언젠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출산장려를 목적으로 만든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임신한 아내 곁에서 쏘 스위트 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동그란 배를 가만가만 쓰다듬거나 심지어 직접 만든 노래를 함께 부르며 아가와 만날 날을 고대하는 부부들의 모습이 등장했는데, 원체 낯간지러운 표현엔 소질이 없는 좁쌀영감은 팔을 벅벅 긁으며 몸서리를 치는 등 오두방정을 떨어 나에게 욕을 먹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좁쌀영감은 아빠 태교고 태담이고 가뿐히 즈려밟은 주제에 둘째까지 본 운 좋은 위인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기가 어디 있겠냐만은, 계류유산으로 허무하게 첫아기를 잃고 몸고생 마음고생 끝에 하윤이가 생긴 터라 나는 임신부터 출산까지 늘 애틋하고도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반면 좁쌀영감탱이는 조심은 했어도 자진해 애틋함을 표현한 적이 없어 날 종종 섭섭하게 만들었다.

조석으로 부른 배에 입맞춤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태동으로 꿈틀거리는 배에 따뜻한 손을 한번 얹어봐 준다거나, 잘 자라 잘 잤니? 같은 안부를 물어가며 하루하루 '엄연한' 성장을 거듭하는 아기에게 담백한 애정을 전해주길 기대하는 마음은 있었다. 그렇게 좁쌀영감탱이는 내가 윽박지르고 잔소리를 해야지만 생각났다는 듯 배 한번 쓰다듬으며 꼴꼴 난 예비 아비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부성은 후천적 습득이요 학습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더니만, 나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도 세심한 감각으로 하윤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요즘의 좁쌀을 보면 일견 수긍이 간다.

좁쌀은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예준이를 안을 때 하윤이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는지, 지난주엔 몰랐지만 이번 주엔 추가된 하윤이의 어휘엔 무엇이 있는지, 하윤이가 좋아하는 흰 우유 상표는 무엇인지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에는 하윤이를 데리고 한참 외출을 하고 돌아와 내내 남편이 돌봤던 예준이를 넘겨받았는데, 녀석의 얼굴에서 남편의 스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걸 보고, 오늘 하루 이 남자가 아기의 볼에 얼마나 많은 입맞춤을 했을지 짐작해봤다. 이제 제법 또렷하게 눈을 맞추는 예준이의 얼굴을 얼마나 따뜻한 표정으로 들여다봤을지까지도.

#내가낳은아이들을가장사랑해주는남자라서패죽이고싶은남편과이혼하지않고살았다는어떤작가의말이생각난오늘
#새벽2시 #육아퇴근 #술먹고싶은심정으로 #끄적이는 #인스타그램 #일주일에두번회식한남편족칠준비중 #애둘육아는정말이지 #극한직업 #아줌마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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