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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Mar 28. 2021

엄마 나이, 6살입니다.

워킹맘의 둘째 출산기


엄마 나이 어느덧 6살

직장에서도 5년 차 넘어가면 대리를 달기 시작하는데, 나는 아직도 수습사원에 가깝다. 자다가 일어나 짜증 부리는 아이를 보며 예쁘게 얘기하라고 다그치기 바쁘고,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메모하기에 바쁘다. 6년 차 정도 되면 이 정도는 유연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도통 엄마라는 직업은 매일매일이 새롭다. 사람 나이 6살이면, 이제 막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고, 새로운 세상에 매일매일이 즐거울 시기인데, 엄마 나이 6살은 보이지 않는 피가 튀기고 살벌한 총성이 오고 가는 교육전쟁에 각종 무기와 방패로 무장을 하고 뛰어들 준비를 해야 한다.

현실판 스카이캐슬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한다.(출처:jtbc)


엄마라는 직급은 올라갈수록 어렵다.

보통 직무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해당 직무에 익숙해지고 편해진다는데 엄마라는 직급은 연차가 올라갈수록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원하지 않게 클라이언트(a.k.a. 자식)가 한 명이라도 증가하게 되면 일은 두세 배로 많아지고 난이도는 곱절은 더 높아진다. 곧 새로운 클라이언트 영입을 앞두고 있는 나는 앞으로 직면할 업무들이 두렵기만 하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들도 늘어난다. 어릴 때는 그냥 잘 먹고 잘 재우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아이 라이드 동선부터 애프터 학원까지 엄마들과 적당히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아는 고통이 더 무섭다?(엄마 경력직의 애환)

첫째는 뭣도 모르고 나서 인지 출산도 육아도 어떻게든 해냈고 해내고 있다. 하지만, 경력직(?!)으로 맞이하는 둘째는 다르다. 그 아픔, 그 힘듦 모두 너무나도 생생하게 잘 알고 있기에 더 두렵다. 모르고 맞이하는 고통보다 알고 그 고통을 기다리는 게 더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경력직은 이 고통을 유연하게 피해 갈 수 없다. 그냥 정면 돌파해야 한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경력직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새로 맞이하는 클라이언트와의 삶은 상상조차 안 간다. 6년이라는 경력이 소용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직장에서의 경력은 올라갈수록 연봉이라도 느는데, 육아는 그런 것도 없다. 오히려 올라갈수록 돈은 더 들고 라이드에 교육에 다들 지금이 좋을 때라고 선배 엄마들이 으스된다.


6년 차의 짬밥

그래도 6년 차 정도 되니, 안사먹이고 손수 매끼 해먹이던 노고 정도는 가뿐히 포기하게 된다. 집에서 먹이지 않아도 유치원에서 할머니 집에서 다 먹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도 핸드폰 영상 안 보여줄 줄 알았는데, 쉬고 싶은 시간이면 양심적으로 영어로 나오는 영상은 1-2시간 보여준다. 다 아이의 영어 조기교육을 위함이라면서. 영어에 재미를 가지고 봐야 롱런할 수 있다는 변명을 아무도 없는 허공에 하며 보여준다. 처녀 시절, 음식점에서 영상을 보여주는 부모를 보며 마음 한편에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과거의 나에게 크게 반성하라고 외치고 싶다. 남편이 주말에 스케줄이 있어 아이와 단둘이 있게 되는 날이면, 꼭 아이에게 책도 읽어주고 함께 그림도 그리고 함께 쿠키도 만들겠다고 무모한 꿈을 꾸었던 지난날의 나에게 철이 매우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6년 차 엄마는 지난날의 환상도 죄책감을 없이 가뿐히 무시할 수 있다.


내 삶의 원동력.

그전까지 나는 일을 매우 사랑하고 내 개인의 삶을 아끼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직까지도 그렇다. 내 삶이 중요하고 육아보다 짬을 내서 일을 해내는 나 스스로에 큰 성취감을 느낀다. 회사의 중요한 미팅 참석을 위해 한 학기에 한번 있는 아이 유치원 상담을 전화상담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아이와의 단란한 저녁식사를 회사의 회식 때문에 포기하기도 한다. 아직 아이에게 100% 나를 헌신하기엔 나의 연차가 부족함을 느낀다.


얼마 전, 회사에서 크게 힘든 일을 겪었다. 회사의 모든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았고, 하루하루 사는 게 지옥 같음을 경험했다. 매일 밤 서늘한 가슴을 느끼며 한밤 중에 깨는 것을 반복했고, 회사에 나가는 길이 나에게는 무거운 진흙탕을 해치고 가는 것보다 더 힘들고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여느 때처럼, 버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 친정엄마가 해주셨던 말이 생각났다. 나보다 훨씬 옛날에 평생을 워킹맘으로 지내온 엄마는 당신이 직장에서 정말 힘들고 치욕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언니와 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우리 둘도 낳아 내가 키우는데, 이 세상에 내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다고 다짐하셨다고 한다. 그럼 어느새 큰 힘이 생겼다고 한다. 어느덧 엄마에게 아이라는 존재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이다.


어릴 적 교회에서 보던 마음을 내가 조금은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출처: TobiNonJov)

희생보다 더 큰 것.

워킹맘에게 아이란 때론 걸림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외 출장에 을 메고 지원해 커리어를 키우는 후배들을 보며 지원은 커녕 나에게 제안된 기회마져 포기할 때, 아이들 때문이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주거지를 정할 때에도 우리 부부에게  맞는 아파트와 동네를 찾기보다는 학군과 주변 유아 시설이   되어있는 동네를 찾아 무리해서 떠나기도 한다. 아이를 위해 부모는 특히 엄마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해도 엄마는 어쩔  없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을 버티게 해주는 가장  힘이 된다. 오늘이 정말 힘들어도 엄마는 포기할  없다. 그리고 무섭지 않다.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엄마기에  세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이렇게 엄마나이 6살 엄마는 오늘도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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