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둘째 출산기
"엄마, 엄마 선물이 뭐야?"
문득 선물이 뭐냐고 묻는 아들을 보며, 나는 '아이가 선물을 달라는 의미인가? 아... 장난감 안되는데...' 하며 물었다.
"선물을 가지고 싶다고? 뭐 가지고 싶은데?"
아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묻는다.
"아니, 엄마의 가장 큰 선물은 뭐냐고."
아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아, 엄마의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아들이지~"
이제야 아이의 얼굴에 가득 미소가 드리운다. 원하는 대답을 들었는지, 큰 함박웃음을 하고는 하얀색 빠방을 타고 퇴장한다.
올해 6살이 된 우리 아들.
너무 예쁘다. 모성애란 것이 생기는 데에는 대략 6년이 소요되나 보다 싶을 정도로 요즘 아이가 너무 예쁘다. 아이를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아이가 곤히 잘 때면 핸드폰을 열어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한다. 친정 부모님을 만나면, 내 근황보다는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예쁜 짓을 했는지를 자랑하기에 바쁘다. 부모님은 니 새끼가 그렇게 예쁘냐며 놀리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을 보며 내심 뿌듯하신가 보다.
모성애를 강요받기 싫었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부터 수없이 쏟아지는 서적과 각종 설명서에는 모든 엄마가 뱃속에 아이를 잉태한 직후부터 뚝! 떨어지는 것처럼 묘사한다. 바로 엄마는 아이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고, 뱃속에 아이를 위해 그 좋아하는 커피를 끊어야 하고 몸에 좋지 않은 라면은 입에도 데지 않는 것처럼 되어있다. 간혹, 회사에서 커피를 사러 갈 때, 라떼를 주문하면 동료들은 나를 나무라며 디카페인을 시키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카페인 들어간 커피가 좋다.
비 임신기(?!) 때처럼 하루 6잔씩 커피를 원샷하지는 않아도, 하루 한잔은 나를 위한 카페인을 섭취하고 싶다. 가끔은 가장 좋아하는 맥도날드에 가서 맥모닝을 즐기고 싶으며, 친구 결혼식에는 부은 발 때문에 아찔한 하이힐은 못 신어도, 5센티 통굽 정도는 신어서 댕댕한 몸을 숨기고 싶다. 가뜩이나 졸음이 쏟아지는데, 밍밍한 클래식보다는 쇼미 더 머니에 나오는 거센 랩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얘기만 나오는 청춘 드라마보다는 매회 짜릿한 펜트하우스를 보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나도 아픈데, 아이에게 젖을 주라고 한다.
꼬박 16시간 진통이라는 죽을 고비를 넘긴 산모에게 병원 간호사들을 모유수유를 권장한다. 산모는 아이를 낳고 바로 젖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서 아이에게 젖을 물려보라고 한다. 아직 아래에서는 피가 철철 나는데 앉아서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려보라고 한다. 걷기고 힘들어 잘 들여다보지 못한 신생아실에서는 아이가 매번 혼자 남겨져 있다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산모에게 전달한다. 그 말을 들은 그날 나는 출혈이 멈추지 않은 몸을 이끌고 아이를 데려와 나오지 않은 젖을 밤새 물렸다.
내가 되고 싶어서 엄마가 된 것이 아니었다.
결혼 3년 차, 이제는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아이가 당황스러웠다. 일찍 결혼한 탓에 친구들은 아직 학교를 다니거나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었고, 나 또한 이제 막 사회를 맛보게 된 상태였다. 아직은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하기보다는 엄마에게 전화하기에 바빴고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보다는 아직 엄마 뱃속을 벗어나지 못한 semi-캥거루족에 가까웠다. 남편이 출장 가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친정으로 가던 나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제 걸음마를 막 땐 아기한테 멀리뛰기를 해보라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나는 엄마 6년 차가 되었다.
주말 아침이면, 아이의 축구교실보다는 내 스터디에 나가기 바쁜 엄마다. 아이와 같은 반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보다는 회사에 가서 동료들과 수다 떠는 게 더 즐겁고, 육아서적보다는 자기계발 서적에 먼저 손이 가는 엄마다. 그런 나의 삶에 아이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놀이방에서 '엄마~'하고 부르면, 재택근무를 하다가도 달려가는 엄마가 되었고, 나 혼자 산다 본방을 놓쳐도 아이와 옛날이야기를 하는 게 더 즐거워지고 있다.(아직 펜트하우스 본방은 포기가 되지 않는다....) 이제야 나에게도 '모성애'라는 것이 조금씩 그리고 진심으로 나오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엄마에게 또 다른 아이가 찾아왔다.
이제야 '모성애'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나에게 둘째라는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첫째 때 그랬듯, 아직 뱃속의 아이보다는 첫째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한잔의 커피로 시작하는 하루는 아직 포기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둘째가 나오기 전에 아이와 그리고 남편과 시간을 부지런히 보내려 한다. 어제는 비빔면과 짜장라면을 주문했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는 인스턴트를 사랑하나 보다.
두 번째 엄마가 되다 보니, 조급하지 않다.
첫 번째 엄마가 될 때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됐다고 자책했었다. 커피를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충분한 우유량에도 완모(모유수유를 Full로 하는 것)를 하지 않는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죄책감까지 들었다. 나오지 않는 '모성애'가 있는 척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엄마가 되는 지금은 조급하지 않다. 둘째는 6년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아픈 꼬리뼈와 갈비뼈를 부여잡고 참는 것도 모성애다.
둘째는 뭐든지 빠르다고 하더니, 확실히 배도 빨리 불러오고 힘들다. 빠르게 성장(?!)하는 배 덕분에 임신 4개월 차부터 갈비뼈 통증(장기와 아기가 갈비뼈를 밀어내기 때문에 생기는 임신 중 통증으로 주로 막달에 많이 찾아온다.)과 꼬리뼈 통증(자궁 뼈가 벌어지면서 허리부터 꼬리뼈 사이게 통증이 생긴다.)에 시달리고 있다. 딱딱한 의자에서 30분 이상 머물지 못하고, 10분에 한 번 씩 화장실을 간다.(아이가 방광을 눌러 자주 화장실을 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 고통을 10개월 동안 참아내는 것은 모성애가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다.
초음파로 보이는 아이를 보고 당장 사랑한다고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지만 모성애 있는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저 묵묵히 이 고통을 참아내는 것도 모성애가 없으면 견딜 수 없다. 두 번째 엄마가 되는 과정은 첫 째 때보다는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모성애는 억지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글
나무늘보(스타트업에 종사하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첫째를 출산하고 100일 만에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5년이 지난 지금, 둘째를 가졌습니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워킹맘으로서 둘째를 임신한 임산부로서 또 다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엄마들에게 혹은 미래의 엄마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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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둘째 아이, 풀지 않은 숙제와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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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비맘 모임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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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금, 제 인생 조정이 온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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