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둘째 출산기
아이 때문에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미혼인 나는 왜 아이를 혼자 두지 못하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왜 아이를 혼내지 않는지 답답했다. 언니의 인생을 왜 포기하고 사는지, 아이의 인생만큼이나 본인의 인생도 중요하다는 걸 왜 인식하지 못하는지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6년 전, 나는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에야 출산 후 언니가 왜 떼쓰는 아이를 쉽사리 달래지 못했었는지 겨우 이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연년생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언니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만나면 어제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언니 모습에 안타까워 한량한 훈수(?)를 두곤 했다. 속상해하는 언니를 보며, 더 모진 독설도 내뱉었다. 그게 언니를 위한 것이라 착각했었다.
그리고, 둘째를 임신했다.
맘카페에 보면 한 명만 낳아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가족을 그리라고 하면, 아빠, 엄마에 언니 그리고 나까지 균형 잡힌 4인 가족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배웠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요즘은 외동이 참 많다. 나도 그렇게 아이를 6년간 키워왔다. 뭔가 숙제를 다 끝내지 못한 기분이 드는 걸 알면서도 무서운 마음에 선뜻 시도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그렇게 둘째를 임신하니 주변 둘째 엄마들의 안타까운 눈빛과 염려의 말들이 들려왔다.
둘은 하나와 천지차이다.
아이가 하나 있을 때도 우리 부부의 세계관은 180도 바뀌었다. 나를 위주로 돌아가던 세상이 결혼을 했을 때 한 번, 그리고 아이를 출산했을 때 또 한 번 바뀌었다. 아이의 방학 시점에 맞춰서 휴가 날짜를 세팅해야 했고, 호텔은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방이나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여행지는 워터파크나 큰 동물원이 있는 곳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주말 스케줄은 아이의 친구들과 만나는 일정으로 인해 비워놓아야 했다.
그래도 우리 둘 부부의 여유시간을 낼 수 있었다.
아이를 위한 시간이 주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에도 우리 부부는 틈틈이 각자의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내었다. 각자의 스터디 혹은 강연을 격주로 잡았고, 서로의 발전에 힘이 될 수 있도록 번갈아가며 아이를 보았다. 스터디에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기혼인 것도 아이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주말 스터디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이런 나를 보며, 아이가 둘이 있어도 나에 대한 자기 계발은 꾸준히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오만했다.
아이가 하나일 때와 아이가 둘이 있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고 알았다. 왜 언니가 매일매일 정말 썩어가는 얼굴로 힘들어하고 있었는지,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가려고 했었는지, 자기 계발은 왜 뒷전이었는지 직접 경험해보니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둘이어도 나는 나의 발전을 유지할 것이라는,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나의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기 옷가게 점원이 문득 나에게 안부를 건넸다.
오늘 잠시 짬을 내어 아이의 옷을 사러 옷가게에 들렀다. 아이 낳고 한 달 만에 외출이라 설래인 건지, 시댁에 맡긴 둘째 아이로부터의 해방 덕분인 건지 나는 매우 설레였다. 떡진 머리에 삔을 꼽고 미쳐 다 들어가지 못한 배를 가린 축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의 옷 몇 가지를 골라 계산대에 놓는 순간 점원은 나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너무 힘들어 보이신다고 힘내시라고 안부의 인사를 건넸다.
그 안부가 위로가 되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