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본4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May 25. 2020

마스크는 그만

신경과 실습, 코로나 이후는?

이제 마지막 학년이다 보니 실습을 도는 과마다 교수님이 무슨 과가 하고 싶냐는 질문을 자연스레 하신다. 그때마다 했던 대답은 처음에는 아직 잘 모르겠다. 등 얼버무리던 대답에서 점점 구체화되어 지금은 아예 신경외과가 모범답안처럼 고정되어 버렸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다행히 준비되어 있다. 메디컬 파트(내과나 소아과 등 수술을 하지 않는 과 통칭)보다는 서저리 쪽이 괜찮고 또 뇌나 신경 쪽이 관심이 가서요.




어쨌든, 그래서 내게 이름에 '신경'이 들어간 신경과는 시작 전부터 흥미로웠다. 특히 본원 신경과는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라 실습을 하며 그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다루는 질환은 많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뇌졸중, 그중에서도 특히 뇌경색의 치료일 것이다.

*뇌졸중(Stroke)은 뇌경색과 뇌출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인데, 뇌동맥류와 같은 혈관 기형의 문제로 뇌출혈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요즘은 생활습관의 변화로 피가 끈적해져 뇌의 일부분에 혈류 공급이 되지 않는 뇌경색이 많은 추세다.


뇌경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당장 내년에 응급실 인턴을 하면 많이 접하겠지만, 그래서 빠른 병력 청취와 신체진찰 및 꼭 필요한 신경학적 검사가 필수적이다. 증상 발현 후 4.5시간 내에 혈전 용해제를 투여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예후가 크게 차이 난다. (4.5시간과 같은 기준은 딱! 정해 놓은 건 당연히 아니다) 문제는 증상이 자다가 일어날 수도 있고, 뇌경색의 증상으로 말이 어눌해지거나 손을 잘 못쓰게 되면 언제부터 그랬는지 체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물론 이런 부분은 CT나 MRI 같은 영상의학의 발달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경과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외과계열의 의학은 실체에 집중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가에 집중하는 느낌이라면 신경과는 그림자만을 보고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자랑한다. 일단 우리가 의식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들은 모두 뇌에서 내려오는 전기신호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며, 감각은 반대로 움직여 뇌에 신호를 전달한다. 그러니까 만약 한쪽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2가지다.


척수신경의 단면


1번, 신호를 전달하는 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아니면 2번, 신호를 내리는 뇌에 문제가 생겼거나. 그래서 둘 중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동반되는 증상을 살펴보거나 직접 환자에게 신체 진찰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잘 거쳐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면 CT나 MRI를 보지 않고도 병변을 국한(Localize)시킬 수 있다. 이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의미를 내포한다. 왜냐하면 영상의학이 발달했더라도 놓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인데 병변을 제대로 특정했다면 처음 찍은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찍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확대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확대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뚜렷하게 보이지만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더 이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몸의 단면을 찍는 CT나 MRI도 똑같아서,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가지고 찍는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수도 있다.)


물론 저런 걸 하려면 엄청난 지식과 노력 그리고 경험이 필요하지만 신경과학 자체에 흥미를 가지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며칠 전에 교보문고를 갔더니 추천도서 목록에 벌써 언택트 경제와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코로나 이후 뉴 노멀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이 참 많은 걸 보고 나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뭔가 달라지는 것 같긴 한데.


사회 곳곳에서 비대면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배송업이 활발해지고 넷플릭스가 영화관보다 익숙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의료 부분에서는 역시 원격의료다. 알고 보니 원격의료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개념이고 단순히 전화나 화상으로 진료를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현실적인 원격의료의 형태로 단순히 의료진으로부터 내려온 오더를 수행하는 검사센터 외에는 뭐가 있을까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동기들끼리도 이런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짓수는 너무 제한적이라 답답했고. 그런데 지난 2월 말 이래로 코로나 19로 인해 한시적으로 정부에서 허용한 전화 처방이 이미 26만 건 이상이라고 한다. 어떻게든 시행될 거고 의약분업 이래로 의료계에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최윤섭 씨가 쓰신 글. 다양한 시나리오를 논리 정연하게 잘 정리해놓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http://www.yoonsupchoi.com/2020/05/20/thoughts_on_telemedicine/


원격의료로 가장 유명한 기업으로 미국의 Teladoc이 있다. 이 회사는 코로나 19 이전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던 회사였는데, 총매출은 계속 늘고 있지만 아직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Teladoc의 수익모델은 쉽게 말하면 의사와 환자를 이어주고 중개료를 받는 형식이다. 경증 환자 위주로 보고 미국에 부족한 일차 의사를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선 괜찮아 보이지만 일차의료체계가 잘 갖추어진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모델이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응급상황이 아니면 이제 빅 5로의 쏠림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아직은 적자다


지난 주 코로나 논문을 하나 읽었다. 유명 저널인 Science에 실린 글이었는데, 중국과 한국이 강력한 일대일 관리(확진자 동선 공개 등)로 코로나를 컨트롤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유럽 또한 그런 조치를 시행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앞으로 전염병의 관리에 사람들의 휴대폰을 사용해 늘 모니터링하는 방식이 아주 유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전염병 확산에는 아주 효율적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에서는 차별과 혐오가 더욱 더 만연해질 우려도 분명히 존재할텐데.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일어나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마스크도 좀 그만 쓰고 싶다ㅠㅠ


#https://news.joins.com/article/23784431


매거진의 이전글 눈 떠보니 6학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