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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Aug 20. 2020

국시를 거부합니다

1.
또 이렇게 하루가 흐른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잘 실감이 나지 않던 참이다. 사실 여기에 글을 쓰기까지에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비록 많은 사람이 보지는 않더라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고, 또 글이라는 것은 기록으로 남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오늘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 
나는 의과대학 본과 4학년이다. 그 말은 즉슨 곧 의사국시를 치고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예정이란 뜻이다. 수련을 받을 병원과 과도 모두 생각해 두었었다.


3.
그런데 멈췄다. 멈춰진 것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냥 멈췄다. 우선 의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국시를 취소했다. 동시에 후배들은 동맹휴학을, 선배들은 사직서를 준비하고 있다. 단체로 휴학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냐 하면,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된다. 곧 수능인데 그전에 어떤 식으로든 타결이 될지는 가늠이 가지 않는다. 의료 부문에서는, 실질적인 일을 배우고 수행해야 될 인턴과 레지던트가 사표를 냈으니 대학병원 운영에 엄청난 차질이 갈 것이다. 지금 대학병원은 당일 접수가 가능한 상태인데 파업이 지속되면 아마 당일 안에 전문의를 보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일단 내년에 학교를 또다시 다녀야 할 가능성도 있다. 내 시간과 내 돈을 다시 들여서.


왜 지금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에 대한 기사는 수도 없이 많다. 찬성, 반대에 대한 근거도 모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시키기 위한 글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다만 애초부터 답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게 '대화'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4.
사실 나는 지금의 의료체계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다. 솔직히 굳이 의사나 의대생이 아니더라도, 현재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다. 이국종 교수님을 안다면 일단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아마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그 불균형이 이런 식으로 고쳐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사건을, 그리고 그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났는지 아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 2017년 12월 16일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미숙아 4명이 사망했고, 2019년 2월 21일 의료진 전원 무죄의 판결이 내려졌다. 요약하면 한 사람당 한 병씩 써야 하는 약을 5명이 나눠 써서 문제가 생겼고, 그것은 한 병을 알뜰히 쓰지 않으면 삭감을 하는 심평원의 정책 때문이었다. 따라서 의료진은 잘못이 없다 하고, 당국은 관행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당시 나는 재판을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내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 생각난다.

그럼 대체 우리 아이는 누가 죽인 거냐고, 누가 책임이라도 지냐고 울부짖는 유가족 대표의 말이었다.

5.
글이 자꾸 길어진다. 이걸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괜찮다. 나중에 내가 보지 뭐.

아무튼 저 일이 있고 나서 이대목동병원은 소아 중환자실이 다행히 적자를 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냐고? 소아 중환자실은 원래부터 적자인데, 저 뉴스가 나가고 난 뒤 인근 지역에서 아무도 저 병원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해는 해당 병원 전공의 1년 차 선생님들이 이미 사직서를 낸 상태라고 한다. 저분들은 과연 바보라서 1년을 그냥 버린 걸까?

의료시스템은 학생이 봐도, 아직까지도 이렇게 허술하다. 비슷한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을 뿐 산부인과, 흉부외과, 감염내과 등 소위 '기피과'에서는 흔한 이야기다.


6.
재판장에서 저 절규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청나게 많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떤 것이 어떻게 잘못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고쳐져야 할까.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그냥 묻고 지나갔다. 묻고 지나갔던 것들은 언젠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을 부정한 채로.


이번 일은 아마 의약분업에 이어 가장 큰 의료계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정부 입장도 일견 이해는 간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코로나와 같은 국제 감염병을 맞아 쓸 수 있는 카드에 이번 결정을 꺼내지 않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체 파이를 늘려 좀 더 균등한 부의 분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반드시 부딪혔을 이야기다. 반드시 바로잡혔어야 하는 주제다. 이것은 내가 의료계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래에 봤을 때 내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


그것과 별개로,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했기를 바란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에 대한 남궁인 선생님의 글
https://blog.naver.com/xinsiders/221187364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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