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의 정의이다. 말 그대로 실없어 보이는 정의이나, 실상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적절한 농담(유머)인 경우가 많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총살 직전까지도 익살스런 미소와 함께 윙크를 날리던 귀도의 모습. 전무후무한 대학살의 위기에서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의 유머가 소중한 아들 조수아를 지켜낸 것처럼 유머는 위기의 순간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준다.
농담은 양날의 검과 같아 적절히 쓰이면 열 마디 말보다 낫지만, 실패하면 입을 열지 않느니만 못하다. 온갖 비판과 합리로 만연한 세상에서 농담이 그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조금 맘이 쓰인다. 나를 비롯한 현대 사회의 ‘바사니오*’들은 그저 입을 다물게만 되니 안타깝다. 농담의 농담(濃淡)을 조절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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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는 친구인 바사니오에 대해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쌀알이라면 100알 중 95알은 쭉정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렇게 신경 쓸 것 없어요.”라고 평가한 바 있다.
농담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joke’를 가리키는 ‘농담(弄談) 말고’, ‘짙음과 옅음’을 가리키는 ‘농담(濃淡)’. 적절한 영어 표현을 찾고 싶으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light & shade’, ‘gradation’, ‘opacity’, ‘heavy’, ‘rich’ …
쿡 찍어 힘차게 내닫던 획도 끝에 가선 희미해지지 않던가. 내 인생에도 농담이 있다면 어디쯤일까. 한 줄 긋고 나면 다시, 천천히 먹을 갈고, 먹물 함빡 먹인 붓을 힘차게 내지르면 되는 것일까. 그럼 다시 인생의 한 획이 시작되는 것일까. 가만히 붓을 들어 한 획을 그어보다 새삼스런 부끄러움에 쓰기를 그만둔다.
_윤동주, '별 헤는 밤' 중
한 획 한 획 정성껏 그어, 겨우 인생이란 두 글자 적을 뿐인데, 지금 긋는 한 획이 옅어진다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 획을 마치면 그 다음 한 획, 그리고 또 다음 한 획 담담히 쓰다 보면 언젠가 내 이름 세 글자쯤 떳떳하고 선명하게 써 볼 날도 오지 않을까? 기다리는 마음으로 쓰기를, 삶을 멈추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