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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Mar 22. 2021

자유를 준다고? 감옥을 받았어

천리향인지 만리향인지, 봄의 꽃향기는 고통이었다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리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일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고3을 앞두고 학교를 옮겼다.

늘 다니던 곳, 늘 있던 곳, 그 도시를 계속 걷고 숨 쉬라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가을에 떠나 겨울 동안 얼어있다가, 봄을 맞았다.


천리향이라 했다.

하교길, 바람에 실려 내게로 온 그 향이 신기해 코를 대고 있을 때 화분을 팔던 아주머니의 말씀. 처음 맡는 그 향이 신기해 나는 그 큰 화분을 사버렸다. 교복과 큰 화분이 담긴 검정 봉지. 토요일 오후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봄꽃이란 걸 느껴보았다.


나의 자유는 봄과 함께 왔다.

오랫동안 간호해 온 그녀를 떠나보내고 얻은 자유. 그토록 바라던 평온. 그러나 나의 자유는 내게 제 이름으로 곧이 오지 못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자유롭지 못했다. 자유로운 것은 그저 흐르던 대로 흘러가는 시간뿐이었다.


자유? 나는 더욱더 갇혔다. 아프고, 그립고, 괴롭고, 억울한 그 모든 것들과 눈물에 갇혔다. 내 몸을 떠나야 할 것들이 떠나질 못했다. 나의 감정과 말들과 생각들은 내 몸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갇혔다.

'자유를 준다고? 감옥을 받았어.'

떠나간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욕심이 되면 늘 그렇게 비꼬았다. 누구를 위한 단어 나부랭이냐, 모질게 따지곤 했다.


자유롭게 꽃향기를 맡던 그 순간, 겨우 그 몇 초뿐이었다. 꽃 향기에 입꼬리가 올라간 나 자신에 화가 났다. 도저히 있는 그대로의 향을 만끽해선 안될 것 같은 미안함이 나를 덮쳤다.


향이 좋아 덜컹 사들고 온 꽃을 화단에 심으며 그렇게 분노가 치밀었다. 향기가 좋다며 미소를 지었던 그 순간의 내가 정신 나간 멍청이 같았다. 진하고 진한 그 봄의 향기가, 나를 떠나 간 내 사랑을 대신해서 얻은 그 향기가, 나는 그렇게 아름다워 욕이 나왔다.

'너 혼자 봄이구나...'


천리향인지 만리향인지, 봄이  가는 동안  향기는 고통이었다. 그렇게 혼이   자유의  아니 형벌의 봄이었다. 자유가 아니어서  꽃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그때는 그렇게, 혼이 나야 마음이 편했다.  혼자 평화롭기엔,  망자의 마지막 봄이 너무도 슬펐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봄이 또 온다. 비슷한 꽃 향이 여기저기. 바람이 실어 나르고 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 향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봄 한 구석이 불편하다. 어쩌면, 그녀가 내게 주려던 이쁜 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저 갔으니 그동안 놓친 봄을 되찾으라고. 이제 저 갔으니 이 봄 향기로 그 자리를 채우라고.


그러나 그녀는 모른다. 육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그때였지만 나의 영혼은 그녀와 함께였던 그 봄들이 진짜 자유로운 봄들이었다는 것을.


꽃 향기를 전하려 열심히 달려오는 봄바람. 바람에 실려 그 고3 소녀도 온다. 이제 내가 맞는 것은 떠나간 그녀가 아니다. 그녀를 그리워하다 그 세월에 갇혀버린 한 소녀다. 그 소녀를 안아주기 위해 나의 봄은 그렇게 흘러간다. 바람과 함께. 꽃 향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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