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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작가 김동석 Oct 22. 2024

곧 문이 닫히려나!

유혹에 빠진 동화! 273

곧 문이 닫히려나!






가끔!

사립문 사이로 소년의 얼굴이 보였어요.

해맑은 웃음을 선물하고 사라진 소년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사립문을 지켜봤어요.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 사이를 통과하며 시원함을 선물했어요.


'삐그덕!

삐그 그 크!'


바람은 사립문을 밀치며 도망치듯 사라져 갔어요.

한 참 뒤

소년이 얼굴을 내밀고 밝게 웃어주고 사라졌어요.

순간!

등골이 오싹했어요.


"너였구나!

이제 생각났어."


가슴이 뛰었어요.

어릴 적 같이 놀았던 소년이었어요.

사립문을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하던 소년이었어요.


"안녕!

날 기억하지.

종수야!"


종수는 사립문 가까이 다가갔어요.


'다다닥!

다다다다!"


사립문 뒤에서 누군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종수는 심장이 뛰었어요.

사립문 앞에서 멈췄어요.


"설마!

사립문을 넘어오지 말라는 건 아니겠지."


종수는 망설였어요.

그때

바람이 불었어요.

열린 사립문 사이를 통과해 종수를 밀쳐냈어요.


"여긴!

출입금지야.

소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


바람은 종수의 가슴을 파고들며 외쳤어요.

아니

소곤거렸어요.


"왜!

저 소년을 아는데.

어릴 적에 같이 놀았던 소년인데.

사립문을 넘지 말라니."


종수는 바람을 붙잡고 물었어요.

그런데

바람은 슬그머니 종수의 가슴을 밀치고 사라졌어요.




영광군 검은산 창녕조씨 제각 사립문/사진 김돔석


종수는 망설였어요.

사립문 앞에서 긴 침묵이 흘렸어요.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상하다!

나타날 시간이 지났는데."


종수는 한 발 뒤로 물러났어요.

또 한 발 뒤로 물러난 종수는 사립문 지붕 위에서 흘러내리는 흙먼지를 봤어요.


"이상해!

바람도 불지 않는데 흙먼지가 날리다니.

지붕 위에 뭐가 있을까!"


종수는 지켜봤어요.

몇 분 후

사립문 사이로 흙먼지가 계속 흘러내렸어요.

사립문 지붕에는 칡넝쿨과 잡초뿐이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지붕 위에서 흙먼지를 날리는 것 같았어요.


'사르르!

사르르륵 크크.

사르륵!'


사립문 지붕 위에서 들리는 소리였어요.


"너희들이지!

이제야 알겠어.

너희들이 지붕 위에서 놀고 있다는 걸."


종수는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봤어요.

칡넝쿨이 기지개를 켜면 잡초가 밀어내며 지붕 위 공간을 차지하려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어요.


"그만해!

너희들이 싸울수록 지붕이 무너진단 말이야."


종수는 사립문 지붕에 기와가 떨어질 것 같아 보였어요.

아름답던 사립문이 무너져가는 걸 알았어요.


그때

소년이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고 사라졌어요.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해."


종수가 사립문을 향해 외쳤어요.

그런데

사립문에서 사라진 소년은 대답이 없었어요.

천천히

종수는 사립문으로 걸어갔어요.

사립문을 활짝 열고 뒤에 숨은 소년을 보고 싶었어요.


"오지 마!

사립문을 넘으면 안 돼.

돌아 가!"


사립문 앞에 다다르자 강한 바람이 불어와 종수를 밀쳤어요.


"으악!

넘어질 뻔했잖아."


종수는 뒤로 물러나며 한 마디 했어요.

자세를 바로 세우고 사립문을 바라봤어요.


"말리지 마!

시간의 흔적을 남길 뿐이야.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야."


하고

사립문이 말하는 것 같았어요.


"사립문이 말하잖아!

그렇다면 소년이 사립문일까.

아니

사립문을 지키는 소년일까.

아니야!

내가 어릴 적 같이 놀았던 소년이야."


종수는 가슴이 쿵쾅 뛰었어요.

사립문 앞에 서있던 종수 머리 위로 흙먼지가 날렸어요.

새까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어요.

종수는 그것도 모르고 이마에 묻은 흙먼지를 손으로 닦았어요.



영광군 검은산 창녕조씨 제각 사립문/사진 김동석



한 참 동안

사립문을 지키던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몇 년 동안

사립문을 넘은 사람이 없었어요.

어릴 적 종수와 같이 놀았던 소년은 사립문 문지기였어요.

사립문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은 뒤로 파괴되어 갔어요.

소년은 사립문을 지키려고 했어요.

그런데

칡넝쿨과 잡초는 야금야금 사립문을 파괴시켜 갔어요.

누군가!

도움 없이는 수백 년 된 사립문이 사라질 위기에 놓었어요.

소년은 사람들에게 사립문을 지켜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종수처럼 소년을 알아보지 못했어요.

소년의 얼굴을 보고 말을 걸어온 사람은 종수가 처음이었어요.


"사라지면 안 돼!

아름다운 사립문이 사라지면 안 돼.

생명수!

그곳에 우리가 마셨던 생명수가 있던 곳이잖아."


종수는 알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칡넝쿨과 잡초가 사립문을 파괴시켜 버릴 것 같았어요.


"칡넝쿨을 잘라야지!

잡초도 뽑고 해야겠어."


종수는 용기가 났어요.

소년의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어요.


"생각났어!

사립이라고 했어.

그 녀석이 바로 너였구나."


종수는 어릴 적 같이 뛰놀던 소년의 이름이 생각났어요.

그 소년은 사립문을 지키는 유령이었어요.

어린이 웃음소리를 제일 좋아하던 유령이었어요.


"안녕!

날 기억해 줘서 고마워."


소년은 사립문 뒤에서 종수가 한 말을 들었어요.

사립문 밖으로 뛰쳐나가 종수를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소년의 유령으로 평생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종수는 늙고 흰머리가 났어요.

같이 뛰놀던 친구였지만 소년은 종수에게 자신이 유령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립!

잘 지냈지.

기억하지.

종수야!

미안해.

까맣게 잊고 있었어."


종수는 느꼈어요.

뼛속에서 새싹이 솟아나듯 어릴 적 추억들이 하나 둘 삐져나왔어요.


"종수야!

보고 싶었어.

너희들을 기다리다 지쳤어.

너희들이 날 잊어버린 줄 알았어."


소년은 같이 놀던 친구가 그리웠어요.

마을에서 친구들이 하나 둘 이사 가며 사립문을 지키던 소년만 <검은산>에 남게 되었어요.


"있잖아!

이곳을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런데

사립!

넌 잊고 살았어.

도시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어.

사립!

이제야 찾아와서 미안해."


종수는 까마득히 잊었던 어릴 적 추억을 꺼내봤어요.

사립문 뒤에서 종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립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눈물이 났어요.


"보고 싶었어!

많이 보고 싶었어.

너희들이

날 찾아올 줄 알았어.

하루

이틀

사흘

자꾸만 시간이 흘러갔어.

그런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

흐흑!"


소년은 울었어요.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종수도 울었어요.

사립문을 사이에 두고 소년과 종수는 울었어요.


그때

사립문 지붕 위를 파괴하던 칡넝쿨과 잡초가 하나 둘 사라졌어요.


종수와 소년의 울음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어요.


"사립!

내가 어릴 적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알려서 같이 올 게.

사립!

걱정하지 마.

사립문을 잘 지켜줄 게."


종수는 울음을 멈추고 말했어요.


"고마워!

종방

경숙

인수

봉수

경자

순옥

만식

경순

우성

동수

희수

옥자

경례


다 보고 싶어.

꼭!

다시 보고 싶어."


소년도 울음을 멈추고 말했어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친구들 오면 술래잡기하고 놀자!"


"좋아!

그때처럼 술래잡기 하자."


소년도 기뻤어요.

어릴 적 함께 뛰놀던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종수는 돌아갔어요.

집으로 돌아간 종수는 고향친구들에게 연락했어요.


"사립!

그 녀석 살아있어.

아직도

그곳에 살아?"


친구들도 까맣게 잊었던 친구 소식을 듣고 즐거워했어요.

종수는 친구들과 날짜를 잡고 사립을 만나러 갈 날을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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