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1일 엄마의 생신 날이자 칠순을 맞이하신 날.
내가 마흔 중반이 돼 가는 동안 난 엄마의 나이를 잊고 있었다.
우리 엄마에겐 70살이 안 올 것만 같았다.
그래도 뽀얗고 하얀 피부에 동글동글한 외모인
우리 엄마의 동안 얼굴 때문인지
그리고 여전히 나랑 저녁때 종종 산책을 나가고,
여전히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기 좋아하시고,
아직도 집안일을 거뜬히 해내시는 엄마의 체력 때문인지,
엄마의 나이를 잊고 살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엄마 없이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루틴한 일상 중에 하나는
엄마랑 1주일에 평균 1번 정도 많게는 그 이상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그건 내가 꼬꼬마 시절부터, 학창 시절, 대학생이 돼서도,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를 낳고 나서도
지금까지 쭉 엄마와 함께 하는 것 중의 하나다.
나에게 누군가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상상을 하라면,
아마, 대중목욕탕에 엄마 없이 나 혼자 가는 것일 것 같다.
엄마는 목욕을 참 좋아하신다.
요새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중탕을 즐기신다.
그 덕분인지, 나 또한 어렸을 적부터 대중탕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탕 안에서 먹는 바나나맛 항아리 우유를 질리지 않게 좋아한다.
어느 날은 엄마랑 탕 안에서 이렇게 앉아있는데.
엄마가 귀여운 여자 아이들을 보고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지셨다.
“ 우리 딸은 나중에 딸이 없어서 혼자 심심하게 목욕탕 오면 어쩌지?”
순간 나 또한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지만,
왠지 슬퍼지긴 싫어 엄마에게 쿨하게 대답을 했다.
“ 그땐 동네에서 친한 목욕탕 메이트를 만들어야지.”
사실, 그렇게 상상해 본 적도 없고,
현실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데, 난 그렇게 쿨한 척 대답했다.
40년 가까이 엄마와 매주 루틴하게 목욕탕 여가 생활을 즐겼는데,
엄마가 점점 나이가 드니, 이제 그런 생각도 드셨나 보다.
아들 없는 아빠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같이 목욕탕 가서 등 밀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난 그들 마음에 무척 공감이 간다.
나는 엄마와 같이 목욕탕을 가니,
혼자 등을 밀지 않는다.
서로 등을 밀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등은 참 중요한 신체 부위다.
왜냐하면, 등은 엄마에게 살이 쪘는지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어릴 땐 엄마가 본인의 등을 보고
“나 살찐 것 같지 않니? ” 자주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반대로 내 등을 보고
“너 등보니 살찐 것 같다.” 말씀을 하실 때도 있었다.
등으로 우리 엄마는 살찜의 정도를 판단하신다.
그런데, 최근 엄마의 등을 밀 때 슬픈 순간이 있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키도 줄어든다 했지만,
요샌 무언가 엄마 등의 면적이 부쩍 줄어든 느낌이 든다.
살을 떠나, 그냥 골격 자체가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특별히 어디가 아프신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현상 중에 하나인 것 같은
엄마의 등 면적의 감소
요새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피사체 중 하나다.
예전엔 엄마 등에 비누칠을 할 때 여러 번 문질렀다면
왠지 요즘엔 몇 번만 밀어도 엄마 등을 다 밀어드린 느낌이다.
꼬꼬마였던 나도 이제 40 중반이 다 됐는데,
내 세월만 중요하게 생각한 게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나에게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엄마~ 하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 같은
그런 존재다.
내가 이렇게 방송작가 생활을 15년 이상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엄마가 전업 주부로만 살지 말라는
애정 어린 조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엄마도 결혼 전엔 서울의 대학교 도서관과 서울의 남산 도서관 등
사서로 일하셨는데, 공무원 아빠와 결혼하신 후
우리를 위해 평생 전업 주부로 사셨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내가 만약에 사서일을 계속했었음 어땠을까?
하시면서 지금도 참 좋은 직업인데, 이렇게 말씀하실 때가 있다.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을 동경하신다.
그리고 딸 또한 그런 여성이 되길 누구보다 원하셨다.
나도 출산과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잠깐 일을 쉬었을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내 옆에 있는 엄마의 도움으로
힘든 순간들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또한,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 순간에 항상 나를 일깨워 주고 다독여준
누구보다 도움을 준 우리 엄마 덕분에
지금도 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고,
지금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내가 엄마~ 하면 달려와 주는 나의 유일한 소중한 고귀한 우리 엄마.
그런 엄마의 등을 난 오래도록 즐겁게 밀어드리고 싶다.
엄마의 등이 여기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즐거운 추억들도 많이 만들어 드려야겠다.
오늘은 그런 생각이 더 진하게 드는 밤이다.
< 오늘의 속삭임>
어떻게 늙는 것이 잘 늙는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노년기는 활동적이고 혈기왕성한 시기가 될 수도 있고,
한발 뒤로 물러난 고요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또 우리가 이제껏 알고 행해온 것들을 다지거나
혹은 탐험을 시작하는 시기가 될 수도 있다.
안락의자에 앉아 몸을 흔들며 노년기를 보내는 것이
어떤 노인에게는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특별한 기준은 없다.
각자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혹은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