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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작 Mar 13. 2023

ep.63  아무튼, 시리즈

내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습관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가 있다.

그간의 글들을 보면,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자 함인지

글 중간중간에 이상하게 ‘아무튼’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그래서인지, 부사인 ‘아무튼’ 이란 말은

나에겐 참 친근한 단어다.


에세이 시리즈 중엔 ‘아무튼' 시리즈가 있다.

‘아무튼’ 에세이 시리즈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책이다.

책이 묵직한 편은 아니고 크기도 아담하고,

종이 재질도 외국 소설책 비슷한 재질이어서 그런지

한 손에 가볍게 들고 다니기 편한 책 유형이다.

출판사도 한 곳의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것이 아니라,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라는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고 있다.

여러 출판사가 한 시리즈를 같이 내고 있다는 것도

신선한 출판 형태인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한 책이니,

제목도 다양하다.

서재, 피트니스, 순정만화, 후드티,

싸이월드, 장국영 , 현수동, SF게임

노래, 목욕탕, 연필, 인기가요,

양말, 게스트하우스, 계속, 잠 등등

지금까지 아무튼 시리즈로 출간된 책이 50권은 넘는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출간 중이다.

유명한 작가들도 아무튼 시리즈에 동참하기도 했다.

장강명 작가는 현수동, 김초엽 작가는 SF 게임,

이슬아 작가는 노래, 김겨울 작가는 피아노,

김혼비 작가는 술, 가수 요조는 떡볶이로 출간했다.


아무튼 시리즈로 출간된 목록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혹해서 읽고 싶은 제목도 눈에 띄었다.

할머니와, 전화영어 그리고 아침드라마, 양말이다.

무슨 내용을 썼을까?  나에겐 참 궁금한 제목들이다.

그리고 최근에 난 사는 게 지겨울 리가 없다는

'아무튼 , 할머니'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내가 '아무튼' 시리즈 책을 접한 건,

이번 할머니 시리즈가 처음은 아니다.

처음 아무튼 시리즈를 읽은 건,

이 책이 아무튼 시리즈라는 걸 알고 접한 건 아니었다.

1-2년 전쯤인 것 같은데, 김상민 씨가 쓴 '아무튼, 달리기'라는 책이다.   

책 제목을 보고, 그냥 읽어보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이었다.

글을 쓴 사람도 그렇게 유명한 작가님도 아니었고,

이 분은 얼마나 달리기가 좋으면 이런 책을 썼을까? 와

책 표지 디자인이 한몫을 했던 것 같다.


김상민 작가는 낮에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달리기라는 몸과 나누는 솔직한 대화에 매료되어

책을 냈을 당시 2020년까지 5,000km를 달렸고,

주로 늦은 밤에 성수동과 중랑천 일대를 달린다고 했다.

2017년 파리를 시작으로

포틀랜드, 베를린, 시카고, 오사카,

그리고 서울에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다.

동네만 달린 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달렸으니,

아무튼, 달리기를 낼만하다.


작가는 목표한 거리를 달리고 나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착각 혹은 위로 속에 살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는 책 속에서 헤밍웨이 말을 인용했다.

“진정한 고귀함이란 타인보다 뛰어난 것이 아닌,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라고.”

독자로서 느껴졌다.

이 작가가 갖는 달리기에 대한 애정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김상민 작가는 달리기를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 ' 아무튼' 시리즈는

자신이 몰입하고 몰두하고 좋아하는

그 무언가에 대해 써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 그 작가의 일상과 삶이 그려지고

작가의 생각까지 읽히니

책을 읽고 나면 작가와 친해진 느낌이 드는 매력이 있다.

그것이 '아무튼'시리즈의 연속성을 살려주는 포인트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무튼' 시리즈라는 것을

알고 읽게 된 아무튼, 할머니.

싱어송라이터이자, 단편영화감독인 신승은 씨가 쓴 에세이다.

직관적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을 가장 최고로 여겨줬던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 글이다.

어렸을 적 외가에서 살았기에 엄마보다 더 친했던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존재인 할머니에 대해서

써서 그런지, 나도 가장 나를 예뻐해 주셨던

외할머니가 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진짜 돌아가신 지 이제 오래돼서,

어렸을 적 추억도 자꾸 잊혀져만 가는 것 같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이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느낌을 줬다.

'아무튼' 시리즈가 또 좋은 건 무언가 작가의 일대기와

숨기고 싶을 법한 본인의 치부까지

솔직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기에,

독자와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쉽게 같이 몰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좋아하는 주인공 그 무엇에 대해

자신의 경험만을 써 내려가진 않는다.

아무튼 할머니 같은 경우는

작가가 영화감독이니, 우리 사회에서 할머니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까지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내 눈길을 끈 건 이런 이야기다.

한국 미디어 속 할머니는 약한 할머니, 아픈 할머니,

손주밖에 모르는 할머니, 정 많은 할머니, 치매에 걸린 할머니,

기껏해야 욕쟁이 할머니다.

그런데, 최근에 본 한 기사가 떠오른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마약을 밀반입하던 79세의

마약 조직 두목 할머니가 잡혔다.

기사 제목에는 ‘반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그 할머니는 기업인 행세를 하며 거래처에서 받아낸 돈으로

코카인을 사서 장사를 했다.

경찰도 이런 자금 조달 스타일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할머니의 이미지에서

엄청나게 벗어난 캐릭터니 기사제목도 ‘반전’이다.

본의 아니게 극단적인 할머니 캐릭터가 범죄자 이긴 한데.

작가의 메시지는 다름 아닌 이거다.

미디어 속 할머니 캐릭터도 이제는

스스로의 서사를 가지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역할.

고정관념을 뒤집는 역할이 미디어에 나오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할머니들은 변화하고 있으니,

아니 진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아무튼 할머니 시리즈는

잊고 있었던 외할머니의 추억과

동시에 우리들도 언젠가 되어야만 하는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끔 해준 에세이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할머니가 될까?

흰머리는 염색을 할까? 흰 눈처럼 새하얗게 둘까?

그때는 난 어떤 옷을 입는 걸 좋아할까?

그때는 난 어떤 색깔을 좋아할까?

그때는 난 어떤 취미를 갖고 있을까?

그리고 그때도 글을 쓰고 있을까?

쓴다면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그리고 여전히 미래에 대해 꿈을 꿀까?

작가와 함께. 나 또한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튼 할머니는

나 이듬이 슬프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어차피 얻어야 하는 직함일지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어쩌면 기쁘게 받아들일 준비를

생각해 보게끔 한 에세이였다.

아주 먼 미래일 수 있지만,

미래는 당연히  다가올 것이니까..


그리고, 난 다음 읽을 아무튼 시리즈를 골라본다.

전화영어를 먼저 읽을까? 양말을 먼저 읽을까?

아니면, 아침 드라마?   



< 오늘의 속삭임>


하루는 할머니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어린 나에게,

뭘 입고 싶다고 한 적은 처음이었다.

혼잣말이었겠지만,

나는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꼭 사고 싶었다.

나 홀로 백화점에 갔다.

교복을 입고 혼자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어색했지만,

용기를 내 옷 파는 가게마다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일백 개의 물건이 있다는,

없다는 것 빼고 있을 건 다 있다는 백화점에도

칠십 대 노인이 입을 수 있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 아무튼, 할머니'   - 신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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