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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의 낮은숲 Mar 24. 2019

복권 사는 노인

[시 -1]

노인은 몸이 무겁다 팔다리가 굳어가는 것을 느낀다 차가운 방바닥에 잠을 청한 탓인가 생각한다 '나이 탓이겠지' 이내 체념이 섞인다 노인은 습관처럼 눈을 뜬다 뻣뻣한 팔다리를 천장 향해 바짝 들고 달달 떤다 시계 초침이 7바퀴 도는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그때가 7시


노인 머리에는 밤새 말아놓은 구르프가 그대로 달려있다 베개 뒤에 놓인 손거울 들고 흰머리를 확인한다 '염색을 할까 말까' 염색약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족집게를 찾는다 흰머리를 뽑는다 아프다 참는다


노인은 허기를 느낀다 냉장고는 텅 빈 지 오래, 밥을 물에 말아 한 입 넣고 '아, 틀니!' 깨진 유리컵에 빼놓은 틀니를 잇몸에 끼워 넣는다 다시 밥술을 뜬다 이번엔 시어 빠진 김치 한 조각을 얹어서 '어쿠, 더는 못 먹겠어 새 김치를 담가야 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말린 천 원짜리를 꺼낸다 '하나, 둘...' 다시 세어 봐도 달랑 두 장 '내 팔자야' 노인은 질긴 목숨을 탓한다 '더 살아서 뭐 해'


노인은 집을 팽 나선다 이천 원을 손에 쥔 채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한다 아픈 다리도 순간 잊는다 '희망은 누가 주지 않아 그건 내가 만드는 거야' 운명처럼 깨달은 듯 진지하다


노인은 지금 복권방 앞에 서 있다 그때가 7시 7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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