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3]
나는 마흔 살이 넘은 지금도 가끔씩 초등학교 1학년 때 먹은 떡볶이 맛을 기억한다. 그 떡볶이 집은 - 아니 집이라고 할 것도 없다. 파란색 천막을 쳐놓고 장사했으니까 -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재래시장 끝자락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다.
할머니였다. 주름진 얼굴, 하지만 입가에 인자한 미소는 떠나질 않던 할머니가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할머니는 유난히 어린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기억력도 좋았다. 그 집에 찾아오는 꼬마 손님들 이름을 다 기억할 정도였다.
은주 왔구나, 학교 공부는 재밌었니?
할머니가 건넨 관심 어린 한마디에 난 괜히 우쭐했고 할머니가 금세 좋아졌다. 할머니는 인심도 좋았다. 100원어치 달라고 하면 항상 그 이상을 그릇에 담아 주셨다. 그리고 떡볶이를 다 먹어갈 때쯤에는 두세 개를 얼른 더 주곤 하셨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할머니가 저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을까, 걱정까지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은 듯 보였다. 늘 웃으며 친손주를 대하듯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할머니가 만든 떡볶이는 정말 맛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내 할머니 떡볶이만 생각했다.
집에 가는 길에 할머니 떡볶이를 또 먹어야지
그렇게 매일 생각했다. '맛의 비결이 뭘까?'... 이런 생각도 매일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떡볶이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먼저 넓은 떡볶이 철판 위에 물을 절반 가득 넣고 긴 떡볶이 떡을 자르지 않은 채 그대로 넣었다. 그다음에 납작한 오뎅을 성성 두 번 썰어 넣었다. 그리고 고추장, 설탕, 간장을 넣고 끓이는 게 전부였다. 물을 많이 부어서 멀건 국물이 많은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집에 오면 엄마한테 할머니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여러 번 졸랐다. '엄마는 요리 솜씨가 있으니까 할머니 떡볶이처럼 똑같이 만들어 주겠지'...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엄마가 만든 떡볶이는 늘 국물이 없었다. 국물이 관건인데... 이것은 떡볶이인가 떡 조림인가. 물을 많이 넣어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웰빙 간식도 아니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렇게 홀딱 반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입안에 침까지 고여가며 추억을 떠올리나 싶기도 하다.
무엇 때문일까. 정말 무엇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난 그때 그 할머니의 인심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따뜻한 눈빛, 다정다감한 목소리, 파란색 천막 안에서 나무 의자에 앉아 어깨 서로 부딪히며 먹던 그 분위기... 가끔 그 맛을 찾기 위해 재래시장을 일부러 찾는 경우도 있다. 여행을 하다가 시골 장터를 만나면 떡볶이 집을 찾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할머니 떡볶이 맛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 어쩌면 그것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맛일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돈이 없어도 즐거웠고 돈이 없어도 행복했고 돈이 없어도 이웃과 나눠먹는 정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인생을 사는 참맛이 사라졌는데 어디서 할머니 떡볶이 맛을 되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시절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맛을 나는 지나치게 집착하며 찾고 있었나 보다. 바보처럼.
p.s. 지난 2012년에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