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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OVESTAGE Jan 25. 2022

(연재8 마지막 회)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8. 마지막 이사

SCENE EIGHT -마지막 이사


한 달 후.


에일린의 집. 오후 3시


음악 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지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유품 정리사(유정)가 하얀색 작업용 위생복을 입고 다른 직원과 함께 들어온다. 고개 숙여 묵념을 한다.  


사이. 


유정                  

임애리 여사님. 당신은 2022년 1월 25일 사망하셨습니다. 이제 지금부터 우리가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돕겠습니다. …  


동료에게            


자, 이제 다시 시작하자. 


에일린의 물건들을 치우기 전에 위생용 장갑을 착용한다. 은색 봉투들이 곳곳에 보인다. 도와주는 직원 한 명이 묶어둔 짐을 들고 잠시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아 짐을 소독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갑자기 윌리엄, 케이티, 이화, 헬렌이 우르르 집으로 막 들어온다. 이들은 진짜 에일린의 가족들이다. 마치 도둑 든 것처럼 다짜고짜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한다. 무대 한쪽에서 크리스는 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리고 윌리엄이 유정을 보자 말을 던진다. 


윌리엄               

워워워.. 잠깐만. 야 당신 뭐야? 청소부야? 누군데 여기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물건을 막 싸는 거야? 


유정                  

아… 어떤 나이 드신 노인분이 여기서 돌아가셨는데요, 경찰에서 유족들이 안 나타나 찾기까지 시간이 좀 많이 걸렸나 봐요. 저희는 청소부는 아니구요, 돌아가신 분들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왔었나 봐요. 이웃에서 냄새가 난다고 어려움을 호소해 현장 청소 허가를 부탁해서…


윌리엄               

냄새? 무슨 냄새?


유정                  

여기서 사망하신 시신에서… 


윌리엄 얼굴을 찌푸린다. 


윌리엄               

그래서 누가 당신들 불러서 청소, 아니 이사를 시킨 거냐구?


 유정                 

이사까지는 아니구요, 경찰 측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일부만 소독이나 정리를 허가해서 저희가 왔어요. 저희는 유품을 정리하는 직원들입니다. 


헬렌                  

무슨 소리야? 우리가 다 유족인데? 


유정                  

걱정 마세요. 선생님. 여기 박스들과 플라스틱 백에 싼 모든 물건들이 그럼 선생님 댁으로 보내질 겁니다. 


윌리엄               

(작은 소리로) 아이 씨발.. 


케이티               

노인네가 집문서도 있고 현금도 항상 가지고 사는데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우선 우리가 다 찾아야 되니까, 잠시 나가세요! 


유정은 그들이 싼 짐들을 옆으로 옮긴 후 조금 뒤로 물러난다. 이화가 유정의 장갑 낀 모습을 보고는… 물어본다. 


이화                  

저… 혹시 그런 장갑 있으세요? 여기 맨손으로 만지기엔 너무 찝찝해서요..


유정 가지고 온 가방에서 여분의 작업용 고무장갑 뭉치를 꺼낸다. 이화가 재빠르게 낚아채며..


이화                  

고마워요. 


이어 헬렌, 윌리엄 나도 달라며 낚아챈 후  열심히 뒤져보는데,


헬렌                  

이 노인네가 금반지가 꽤 큰 게 있었는데.. 어디 갔지? 왜 안 보여? 대충 숨겨둘 만한데 뒤져 봤는데 없네? 이거 유정인가 뭔가 하는 저 사람들이 훔쳐간 거 아냐? 저 묶어놓은 봉투들도 하나하나 다 풀어봐야 하나?


이화가 그 말을 듣고 검은 봉투들을 다시 열어본다. 그러다 그 속에서 냄새나는 옷들과 처방약 병들을 보고는 얼굴을 잠시 찌푸리다가 곧 다시 넣어버린다. 유정이 다가가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 검은 봉지들 사이에 세워둔 액자를 들어 올려 물어본다.


유정                  

아.. 이 액자 속 사진은 누구예요?


윌리엄이 돌아보고 그 액자를 들어본다.


윌리엄               

아, 그거 우리 아버지 사진인데, 돌아가신 지 20년도 더 됐어요. 버려요. 


그리곤 그 액자를 쌓인 검은 봉투들 위로 던진다. 그 순간 다렌이 누군가와 함께 그곳에 나타난다. 모두를 향해 얘기한다.


다렌                  

잠깐만!... 여기.. 변호사님 오셨어. 


모두들 뒤적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변호사를 쳐다본다.


변호사               

안녕하세요. 임애리 여사의 가족 분들 되시죠? 여러분들이 찾고 있는 서류를 제가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그렇게 찾지 마시고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케이티               

아.. 이제야 나타나셨어.  


이번엔 진짜 가족들이 낯선 변호사를 중심에 두고 모두 거실 테이블에 모이기 시작하고 앉는다. 변호사는 모두들 모인 걸 확인하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낸다. 


사이.


모여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변호사               

전 임애리 여사와 함께 유언장을 작성한 변호사입니다. 반갑습니다. … 그럼 고 임애리 여사의 유언장을 읽어내려가겠습니다. 


음악. https://youtu.be/4oeAn8Q4U8I 같은 풍의 노래.  말없이 이 장면을 보고 있던 크리스. 무대의 밴드석에서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며느리 듣거라. 


변호사의 음성에서 순간 에일린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에일린               

살아생전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었나 하는 거란다. 내가 살면서 욕심을 부렸다면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고 엄마는 어릴 적 풍족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는 남들이 못 가지고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유언장을 적으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못난 엄마를 용서해 주렴. 


우애 좋고 바르게 잘 살아가길 바랬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 들 무슨 소용 있겠니? 엄마가 욕심을 부려서 미안하고 사랑한다. 그동안 이 못난 엄마를 돌봐줘서 고마웠다. 내가 카페에서 장사를 하는 동안 너희들이 이따금 돈이 필요하다며 나를 찾아왔던 일들을 기억할 거다. 비록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찾아와 준 것이지만 엄마는 행복했다. 그래서 엄마는 이미 그때 너희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다 줬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내 장례를 치르면서 장례비용을 뺸 나머지를 모두 고아원에 기증하고 싶구나. 


가족들 모두 충격과 실망감에 웅성거린다. 


또 한 가지 더 남길 것이 있는데 아버지 사진이야. 내 것은 별도로 찍어둔 게 없지만 내가 너희들 보면서 살아가는데 지금까지 가장 큰 힘이 된 사진이란다. 그래서 부탁이지만 저 사진 한 장이나마 너희들에게 남기고 가마. …


크리스 밴드석에서의 노래가 조금 커진다...


노래가 끝나자, 


변호사               

어머님의 유언장은 여기서 끝입니다. 고 임애리 여사님의 유언장대로 장례비용을 뺀  모든 유산은 지정해 주신 고아원에 기부하겠습니다. 자제분들 중에 혹시 저 사진을 맡으실 분이 계실까요? 


케이티               

세상에 어쩜 어머니는 남아있는 자식들 생각은 하나도 안 하실 수 있으시데요? 그 많은 재산들은 그럼 다 기부하셨다는 거예요? 장례비용까지 철저하게 계획하셨으니 분명 그러시고도 남으시겠지만.. 난 짐짝 맡을 생각 없어요. 헬렌이나 다렌이 알아서 챙겨 가세요. 죽은 지 20년이나 된 저 낡은 사진을 꼭 남기셔야 했나. 우리한테 짐짝이나 주려는 수작이지. 


헬렌                  

케이티. 이제 엄마 없다고 아주 막말하시네. 매정한 건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정말 정 떨어지는 년이네. 


케이티               

뭐? 뭐가 어째?


헬렌                  

오빠(윌리엄) 나도 저 사진 안 가져. 우리 집도 인테리어 해치고, 요즘 누가 저런 흑백 사진을 집에다 걸어요? 크기만 크고 흉물스럽게..


이들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 다가와 불쑥 대화에 끼어든다. 


크리스               

그만 좀 해!  다들 그럴 줄 알았어. 아버지 사진 내가 가지고 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다들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도 엄마한테 돈 받은 게 있어서 할 말은 없지만 형이랑 누나랑 그리고 형수까지 해도 해도 너무하네. 그동안 엄마한테 한 일이나, 가져간 거 생각을 해봐. 다들 본인들이 잘 알 것 아니야. 재산 안 남겼다고 뭐라 하는 게 말이 돼? 사진 하나도 맡기 싫어하는데 그동안 돌아가면서 엄마 모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가 형이랑 누나네 집에 있으면서.. 눈치 보면서 살았을 생각 하면 속에서 열이 뻗쳐. 재산 안 남기고 가신 게 정말 다행이지. 형이나 누나는 재산 물려받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이 꼴 나서 어쩐데. 그동안 엄마 모시느라 애쓰는 공도 없게 됐으니… 


이화                  

여보, 근데… 나도 그 사진 갖고 가고 싶지 않은데.. 난 무슨 죄야. 이제 어머님도 안 계시고 내 집은 내 맘대로 하고 싶은데, 내 의견은 안 물어보고 당신 맘대로 혼자 결정해? 어머님은 돌아가신 마당에 왜 저런 사진을 남기시고 가서 이 분란을 또 만들게 하는지 정말 끝까지 속만 썩이시네..  이제 사진만 보면 스트레스받아서 두기 싫어.. 당신은 어떻게 매번 당신만 생각해. 그동안 어머니 모시면서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었지? 오래돼서 냄새도 심한 걸 뭐하러 가지고 가?


크리스               

여보…. 좀 닥쳐줄래? 자식 낳아서 여태 먹여주고 키워주고 입혀주고 가르쳤는데 말년에 짐 좀 되면 어떤데? ..

내가 전화를 했는데도 한동안 엄마가 전화를 받지않아..덜컥..겁이 났어.. 그래서 황급히 주변에 연락했구, 걱정하면서 119에 알렸어 ..주변에 형도 있고 누나도 있었는데.. 씨발 뭐 하고 있다가 엄마 돌아가시는 것도 몰라? 참 대단들 하시다.


이제 여기서 헤어지면 서로 얼굴 보는 일은 없겠지? 마지막 남은 건 뭐 건질 것도 없으니 안 보고 각자 생활하면 되겠네. 우리 가족이란 게 뭐 다 그렇지. 그나마 엄마 아니었으면 크리스마스에도 서로 연락할 일 없었을 텐데…  이제 서로 찾거나 만나지 않을 셈이니.. 씨바 행복해? 행복하냐고!... 


오늘 처음으로 ….. 사람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영혼이 있어서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이제 볼일들 다 끝났으면 닥치고 사라지시던가… 


윌리엄               

뭐야? 이 새끼가 형한테 .. 넌 위아래도 없어? 미친 거야? 유세 떨지 마 이 새끼야!                  


윌리엄이 주먹으로 크리스의 얼굴을 가격한다. 크리스 쓰러지고 다렌이 형을 막고 쓰러진 크리스의 일으켜 세우려고 도와주는데 크리스가 손을 뿌리친다.


헬렌                  

저놈이 정신이 나간 거야. 


윌리엄               

저놈의 새끼가 자기는 뭐가 잘났다고 혼자서 저러고 있는 거야? 야 이 새끼야? 남들 학교 졸업하고 취직해서 부모님께 용돈 드리면서 효도할 때, 멍청한 사기꾼 친구 새끼에게 속아서 도망 다니다 엄마 힘들게 하고 계속 용돈만 축낸 주제에…..왜? 이제 자리 잡고 살만하게 되니까, 때마침 엄마 죽고 넌 더 이상 모실 일도 없고 돈 나갈 일 없어서 좋지? 


유정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가 한 마디 거든다.


유정                  

저..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요.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이 사진.. 혹시 액자까지 가져가시는 게 좀 그러시면 그러면 사진이라도 빼서 가져가시면 안 될까요?. 


윌리엄, 그제야 마지못해.. 다렌에게


윌리엄               

야, 다렌. 니가 사진이라도 좀 꺼내와라. 


유정                  

저희가 빼드릴게요. 


액자를 뒤집어 커터 칼을 이용해 가장자리 테이프를 잘라 여는 순간 50파운드짜리 지폐 뭉치와, 반지, 목걸이 같은 폐물이 후드득 바닥에 떨어진다. 그 소리를 듣고 윌리엄, 헬렌, 케이티, 이화 모두가 달려들어 줍는다. 


음악.


무대는 점점 어두워지며.. 영국 전 총리(테레사 메이)의 담화 내용 중 일부의 음성이 들린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자막이 되어 깜깜해진 무대의 벽에 크레딧 처럼 벽을 타고 올라간다. 


테레사 메이 음성 파일 

[1]


“영국엔 9백만이 넘는 국민이 종종, 또는 늘 외롭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매달 20만 명이 넘는 노인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단 한 차례도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구요, 장애를 가진 젊은이들의 85%가 매일 외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Yet more than 9M of us say that we always or often feel lonely. 


200k older people have not had conversation with a friend or relative in more than a month. 


Up to 85% of young adults with disabilities say they feel lonely most days…”

..

.

음악 소리 커진다. 


무대 어두워지며 크리스마스 디너에 모여 함께 찍었던 가족사진이 무대에 맺힌다. 


막이 내린다. 


          

[1]


2018년 영국 정부엔 국민의 외로움을 걱정하는 <외로움부>라는 정부 부처의 장관이 지명되었다.  

https://www.nytimes.com/2018/01/17/world/europe/uk-britain-loneliness.html

  가까운 일본은 2021년 2월 같은 부처의 장관이 지명되었다. 

https://asia.nikkei.com/Spotlight/Coronavirus/Japan-appoints-minister-of-loneliness-to-help-people-home-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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