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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Nov 24. 2022

우울한 할머니

우울한 할머니

마당에서 며느리와 서울서 온 손녀가 씨마늘을 고르고 있다. 마루로 가져와서 같이 하자고 했는데 며느리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유행가 틀어놓고 한 시간이나 마늘을 고르니 자잘한 마늘도 한 바가지는 나온다. 까줄 테니 달라고 하자 며느리가 노인이 눈도 밝다 하면서 헛간으로 쑥 들고 가 버린다. "고얀 것!"

엉덩이를 붙일 새 없이 바쁜 팔순 며느리... 고구마순으로 나물을 하려나 보다. 마루로 가져오면 같이 거들어볼까 했는데 바깥부엌에서 등까지 돌리고 혼자 한다. "고얀...."

남은 바쁠 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데 우리 며느리는 왜 저 혼자 다 하려는 걸까. 100살 시모 일 시키면 흉이라서 그런다는데, 속마음이 꼭 그것만은 아니라는 걸 아니 내 속도 섭섭키는 매한가지다.

손녀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재롱을 부린다. 핸드폰으로 꼼지락꼼지락하니 내가 좋아하는 <황성옛터>가 흘러나온다. 남인수라는 양반이 옛날 극장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 멋들어진다. "아따, 좋다. 참말 좋다."

백날 천날 들어도 모자랄 판에 아들이 저 좋아하는 '찔레꽃'을 틀어달란다. 찔레꽃을 듣고는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를 틀어달란다. 아들도 섭섭하고 등돌아 있는 손녀딸도 섭섭하다.

백살까지 살아 좋은 소리보다 나쁜 소리를 더 들었다. 복받아서 오래 산다는 말은 입에 발린 소리일 뿐이지, 아는 척을 해도 흉이 되고, 잘 먹어도 흉이 되고, 노래를 불러도 흉이 된다. 생떼같은 어린 자식들 넷을 먼저 보내면서도 조상님네 묘를 정성껏 가꾸고 비까지 세웠는데, 이래 나를 오래 살게 하면서 욕먹게 할줄 누가 알았겠나. 원망스럽다. "뼈가루를 파내다가 바다에 확 뿌려불까 부다."

무슨 죄로 내 명이 이리 길까...

아들이 10년만 딱 더 살았으면 좋겠다...



**명절날 할머니의 푸념이 하룻밤을 새고 이틀밤을 새고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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