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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글남 Oct 12. 2019

또라이가 쏘아 올린 작은 불씨

그렇게 허구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18세기 무렵 벤자민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견하기 전까지 인류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에게 번개란 신, 혹은 하늘이 벌하는 무엇이었다. 더불어, 그 결과로 발생된 불은 인류에게는 그저 뜨겁고, 보금자리인 숲을 태우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나간 또라이가 불 옆으로 다가갔다. 겁도 없이 손에 쥔 막대기에 불을 옮겨 붙이고 무리의 일원인 사피엔스들과 동물들에게 휘두른다. 그리고 불이 붙은 막대가 떨어진 곳에서는 또 다른 화재가 발생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인간이 불에 접근하고 의식적으로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화재로 불에 탄 동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불을 활용하여 화식을 하게 되었고, 이는 고등 생명체의 기관 중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창자와 뇌 중에서 창자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뇌에 몰빵을 한 인류는 직립보행으로 작아진 골반으로 아기가 나오기 위해 미성숙의 단계에서 출산을 하게 됐고, 이런 아이를 보살피기 위한 행위는 그 어떤 동물들 보다 강한 사회성을 갖추게 하였다. 그와 더불어 발전한 언어는 집단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인류에게는 한 가지 도구가 발달했다.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이다.


그렇게 바야흐로 허구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부터 흔히 세상의 질서라고 착각했었던 허구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기업과 국가, 국가의 기반인 평등, 인권 및 자본주의, 그리고 종교까지 살펴볼 것이다. 글을 읽기 앞서, 본인은 과연 어디까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객관식을 가장한 논술형 문제다. 모두 다 진실일수도 있고, 모두 다 거짓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조차 허구일지도 모르겠다. 


1. 기업


“미국에서 유한회사를 일컫는 기술적 용어는 ‘corporation(법인, 기업)’인데, 이는 아이러니다. 그 어원인 라틴어 ‘corpus’는 ‘몸’이라는 뜻인데 법인에 딱 하나 없는 것이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실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법은 이들 기업을 마치 뼈와 살을 가진 인간처럼 법인으로 취급한다.” – p57-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 삼성을 예시로 생각해보자. 삼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일단 이건희 회장이나 각 계열사의 사장을 맡고 있는 자식들이 증발한다고 해도 삼성이 사라지는 건 아님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특정 계열사가 혹은 전체 계열사가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이 된다면 삼성이 사라지는가? 그것도 아니고, 전 직원이 해고를 당하거나 자본금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삼성이라는 기업은 존속될 것이다. 상황이 애매하니 거꾸로 생각해보자. 무엇이 삼성이라는 기업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삼성 회장이 ‘이제 삼성은 파산하도록 하겠습니다’따위의 말과 함께 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법원의 도장을 받으면 사라질 것이다. 직원도, 유동자산도, 건물이나 공장들도 그대로겠지만 삼성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짓말은 나만, 혹은 소수의 집단만 그것을 믿고 있는 사실에 부여되는 단어이다. 해당 사실을 믿는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우리는 이것을 ‘가상의 실재’라고 부른다. 마치 삼성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을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신뢰하는 집단의 일정한 절차를 거친 승인이다. 기업은 국가라는 신뢰 집단이 승인을 하여 실재함을 인정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승인의 주체인 국가는 정말로 실재하는가?


2. 국가


“미국인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평등한 반면 바빌론인들에 따르면 사람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물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옳고 바빌론 사람이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함무라비는 당연히 자신이 옳고 미국인들이 틀렸다고 받아칠 것이다. 사실은 모두가 틀렸다. (중략) 사피엔스의 풍부한 상상력과 그들이 지어내어 서로 들려주는 신화 속뿐이다. 이런 원리들에 객관적 타장성은 없다.” – p162 ~ 163 – 


대한민국이나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각 국가의 국민들이 이러한 실재를 믿는 이유는 특정 국가의 소속이 됨으로써 치안이나 재산의 소유 등의 권리를 국가가 제정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고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러한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에서 강조하는 평등과 인권이라는 요소이다. 현대인에게 진리와도 같은 두 요소가 과연 객관적인가 의문을 던져보자. 그것이 객관적이라면 왜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늦게 발현된 것이며, 이전 시대의 국가들은 어떻게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어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발견된 사실들, 역사의 기록들이 말하는 바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객관적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 시기의 맥락이 존재하였고, 그것은 때로는 통치자의 선택에 의해서, 혹은 기존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신흥세력에 의해서 새롭게 정의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지금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평등과 인권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어떠한 형태로라도 상상의 질서는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3. 종교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p 298-


종교는 인류가 가장 먼저 만든 가상의 실재였을 것이다. 태양이나 나무를 믿고, 곰이나 소를 경외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농업혁명은 이들을 숭배의 대상에서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이후 나타난 종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이다. 앞선 종교는 몇 명의 신을 믿는지에 따라 일신교, 이신교, 다신교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의미의 종교들이다. 그리고 후자는 종교라는 말로 일컫으면 불편하게 느낄 사람들이 많을 자본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사상이 객관적 타당성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한 가지 가정을 해봄으로써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만일 1만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과정을 다시 진행한다면, 그래도 매번 일신교가 등장하고 이신교가 쇠퇴하는 것을 보게 될까? 그런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 답을 알 수 없다. (후략)” -p 336-


여타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모든 지점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며 쓰여졌다. 다른 길의 경우는 가정법으로 접근을 해야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서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 인류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길로 들어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때는 현재의 이데올로기가 ‘만약에’를 수반하는 가정이 될 것이다. 이런 선택은 그 시기의 사회 맥락에 따라 선택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최상이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님은 기억하자. 인류의 번영과는 무관하게 역사는 그저 쓰여질 뿐이다. 

이렇게 거대해진 사피엔스는 상상의 질서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공통된 상상을 믿는 것 이외에는 이 규모가 상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기업, 국가, 종교, 이데올로기 등 가상의 실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벽을 부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큰 벽일 뿐이다. 그리나 이런 벽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더 나은 무엇을 상상하게 만드는 시작일 것이다. 더불어, 벽 안의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말자. 그래야 기존 벽이 허물어지고 마주할 땅에 그 비옥함이 안전하게 퍼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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