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는 다양한 정답이 존재할 것이다. 아니 했을 것이다. 비트코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적어도 나는 비트코인이 처음 나와서 헐값에 거래되었던 때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이 지금까지의 투자들 중 최고의 수익을 기록했던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트코인의 부흥과 더불어 다양한 가상화폐들도 관심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이더(ether)이다.
그런데 이더가 해커에게 6,000억 달러 상당을 도난당했던 사건은 들어봤는가? 2016년 6월 17일, 익명의 해커가 자행한 강탈은 투자자들에게는 큰 재앙이었겠지만 사실 해커들이 시스템의 오류를 파고들어 쟁취한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사건에 대한 결말은 모든 것을 도난 이전으로 되돌리는 ‘하드포크’ 방법을 취하는 것이었다. 개발자인 부테린의 주도 하에 실시된 하드포크에 대한 투표는 87%의 찬성과 함께 시행되었다. ‘제 3자의 개입 가능성 없이 프로그램에 설정된 대로 정확히 실행되는 어플리케이션을 위한 분산적 플랫폼’이라는 이더리움의 사명은 상식을 넘어선 예외 상황에서는 예외였다.
신뢰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라는 것은 특정 지역에서 통용되었던 지역적 신뢰에서 법과 같은 제도를 통해 보장되는 제도적 신뢰로 발전했고, 이제는 개인이 중시되는 분산적 신뢰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앞선 사례에서 봤던 블록체인 기반의 이더리움의 사명은 그런 분산적 신뢰를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런 분산적 신뢰의 경우도 깨질 수가 있었다. 바로 해당 네트워크의 개인들의 결정으로 말이다. 과반수를 넘는 경우에만 진행된다는 합리적인 결정 과정은 사실 사용자의 과반수가 아니라 보유량의 과반수에 의해 결정된다.주주회의에는 수 천 명의 소액주주가 아닌 소수의 대주주들만 초대되어 진행된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다수를 따라가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도난이건, 금융위기건 두려울 것이 없다. 리셋하면 그만인걸? 다만 그런 리셋들이 합리적으로 결정되어 네트워크 전체의 신뢰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다. 그런데 이게 ‘분산적’ 신뢰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이 맞는 것인가?
분산적 신뢰가 주된 사회에서 개인을 믿기 위해서는 개념과 플랫폼의 신뢰가 쌓이고, 그 이후에 믿을만한 개인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를 신뢰더미 쌓기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명절 제사에 쓸 사과를 고를 때 먼저 상자 자체가 썩지 않음을 확인하고, 그 안의 사과들 중에 실한 것을 고르는 것과 같다. 블록체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정보가 부족한 영역과의 교환이나 결정이라는 행위에서 필연적을 발생하는 마찰을 모두의 보증 하에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이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신뢰 지형이 될 것임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개념과 플랫폼은 사고실험이나 진짜 사고를 통해서 점차 보완될 것이다. 결국 핵심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하여 내가 기대한 것을 얻게 해줄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개인이 믿을만한 사람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친구의 친구처럼 연결고리들로 연결되는 경우, 각각의 연결고리는 서로의 이해를 고려하는 것이 각자에게 이득이 되는 ‘밀폐형 이해’일 때 보다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