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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Aug 15. 2023

사진07_이불



  최근에 이불 하나를 버렸다. 군 생활을 마치고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한 오래된 이불이었다. 푸른색 배경에 아라베스크 문양이 가득한 이 이불은 원룸이라는 나의 작은 공간 안에서 늘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들 때를 제외하면 늘 비어있었기에 가끔 책상 앞에 앉아있다 무심코 뒤돌아볼 때면 이불은 마치 바닥에 걸린 그림처럼 보이곤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색이 바래질 줄 알았던 이불의 운명은 어느 날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것은 바로 도담이와 도랑이의 등장이었다.

 

  올라타면 폭신하고, 덮으면 따듯하며, 뛰어다닐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는 이불은 그들에게 언제나 즐거운 놀이터이자 휴식처였다. 이불에는 내가 아닌 그들의 내음이 잔뜩 묻어있었고 계절과 위치에 상관없이 어딘가에서 늘 도담이와 도랑이를 품고 있었다. 심지어 옷장 안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색은 바랬고, 천은 닳고 해져서 눈이 닿는 곳곳마다 찢어진 흔적이 보였다. 수많은 세탁을 견뎌낸 이불솜은 빳빳해져서 더이상 잘 구부러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버려야지 하고 옷장에서 거실로 가져나온 게 벌써 작년 겨울이었지, 아마. 마침내 나는 이불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낮잠을 여기서 잤는지 밤공기 속에서도 어디선가 익숙한 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이불 위 (2015)



이불 위 (2016)





이불 위 (2016)



이불 위 (2017)




이불 위 (2017)




이불 위 (2017)




이불 위 (2018)



이불 위 (2019)




이불 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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