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3 발표를 바라보며
필자는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입니다. 코로나가 있기 이전부터 원격근무에 대해서 좋은 점을 많이 생각하고 또 주위에 전파하고 지냈습니다. 왜냐하면 온라인이라는 네트워크가 전세계를 감싸게 되면서, 시간도 공간도 더이상 우리의 활동을 제약할 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IT업무를 예술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어떠한 코드 혹은 기능을 정량적인 기준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코끼리라는 동물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면 그 누구도 똑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처럼, 그것을 프로그래밍 코드로 만들어내면 모든 개발자의 코드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 8시간 사무실에 앉아서 일만 하는 것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측정할 수 없고, 자연스럽게 더 창의적인 사고를 많이 할 수 있는 장소, 시간에 잘 만들어내는 것이 오히려 효율성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원격근무를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원격근무가 아니라 한 곳에서 업무를 하더라도 마치 원격근무를 하는 것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의논하고 하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가져가고, 마치 구글에 검색하듯이, 누군가의 업무를 언제나 찾아볼 수 있도록 제공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저는 '비동기식 업무'라고 표현하는데, 이후 글에서 별도로 소개할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긴 얘기로 서두를 시작한 것은, 그만큼 저는 원격근무에 대한 찬양론자라는 것을 먼저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런 제가 이번에 아이폰13 발표를 보면서 문득, '아... 혁신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가 더 좋아지고, 배터리가 더 강해지고, 화면도 더 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획기적인 한 방이 없었습니다. 그 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생전에 스티브잡스는 원격근무를 싫어함을 넘어서 혐오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면 회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사무실도 우연한 마주침이 계속 생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하죠.
네트워크 시대에는 메일과 채팅으로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미친 짓이다. 창의성은 즉흥적인 회의와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토론에서 비롯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묻고, '와우'라는 반응을 보이는 순간 이미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잡스'중 -
이 글귀가 떠오르면서 원격근무를 예찬하던 저는 그 이면에 있는 어두운 단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우리 머릿속으로 정확한 구성도가 그려질만큼 구체적인 일을 할 때에는, 나 자신의 좋은 컨디션과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과제라면 어떨까요?
얼마 전에 같은 팀에서 일하는 기획자의 고충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목표는 잘 알겠는데, 그것들을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 막연하고 뿌연 느낌이라 아무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사당초에 그 기획자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이 가장 큰 단계의 컨셉정도만 있고, 구체화에 대해서는 얘기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한 원격근무가 진행되고 있었고, 1주일에 한 차례정도만 팀원들끼리 모여서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막연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들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창의와 혁신은 정말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듯이 번쩍하고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Never. 위에서 인용했던 문구에서와 같이 업무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는 가운데서 개선하고 바꾸고 뒤집어보면서 혁신적인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와우'할 새로운 것은 대면관계에서만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구글, 애플과 같은 글로벌한 회사들은 코로나지만 원격근무를 잘 하는 것처럼만 보이고, 마치 우리 회사는 너무 고리타분해서 원격근무로는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아이폰13 발표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카메라가 좋아졌고, 디스플레이 화질이 좋아진 것처럼, 제가 재직중인 회사도 매출이 늘었고, 수익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없었던 기능이 혁신이라는 라벨을 달고 나타난 기능이 없었습니다. 필자의 회사도, 글로벌한 애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구체화되었던 기능들의 고도화, 개선된 버전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원격이 가능한 일명 '비동기화된 업무방식'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원격근무만으로는 새로운 혁신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고,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