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군 대로 먹고 사니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사람이 농작물을 직접 기르는 것과 인공지능이 기르는 것에는 어떤 같고 다른 점이 있을지 여러분의 생각을 적어보세요.
2. 기후 위기 시대에 텃밭 가꾸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보세요.
팔월 보름을 보며 소원은 비셨는지요? 저는 엊저녁 아이와 함께 경화역 인근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밤이지만 한낮의 덥고 습한 공기가 사라지지 않아 선뜻 나서기가 꺼려졌으나 낮에 아이와 저녁 산책 약속을 한 터라 억지로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이는 저녁 산책의 몇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내년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교가 경화역 인근에 있어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고 둘째,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으며 셋째, 요즘 건강관리를 위해 혼자서라도 걷기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아이 덕분에 구름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하얗고 예쁜 보름달을 우러르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아이는 공원에 비치된 나무 그네를 타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는데 의도하지 않게 모기님께 발목과 팔목 양 목을 내어주는 선행을 실천하였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의 영혼을 북돋우고 빛내는 자리가 된 것 같아 내심 흐뭇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이어진 추석 연휴 덕분에 장래의 일에 대해 세 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거리는 있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 내실을 다지며 승진 준비를 하느냐 둘째, 집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옮겨 아이와의 시간을 좀 더 내밀히 보내며 마음 편히 대학원 공부에 집중하느냐 셋째, 제삼의 곳으로 옮겨 승진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느냐 하는 세 갈래 길이 그것입니다.
‘그때 관리자의 제의를 받아들여 악착같이 했더라면’, ‘그때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대학원 과정을 마쳤더라면 어땠을까’하고 뒤늦은 번민에 요즘 자주 빠져듭니다. 두 가지 일을 억지로 밀어붙였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겠지요.
공자는 “마음자리를 바로 세운 뒤 삶을 그려 나가라[회사후소(繪事後素)].”는 삶의 원칙을, 불가(佛家)에서는 “번뇌가 깊을수록 깨달음은 깊어진다.”는 진리의 빛을 어둠을 배경으로 한 밝은 보름달처럼 우리 마음자리를 비춰줍니다.
오늘 동네 인근 사찰 주변 오솔길을 걷다 보니 매끈한 느티나무 줄기에 매달려 있는 매미 서너 마리의 뒤늦은 입적(入寂:고요한 속으로 들어감)을 보았습니다.
올 때 그 모습 그대로 가버린 매미의 모습을 보며 나의 몸과 마음, 생각의 자리를 간소히 하면 할수록 보름달처럼 우주 만물을 환히 밝히는 지혜의 빛은 점점 커지리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후 위기 및 인공지능 시대의 대안으로 시골에서 몸소 텃밭을 가꾸며 욕심없이 간소하게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선현의 시가 있어 소개해 봅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村俗雖云野(촌속수운야) 시골살이 촌스럽다 말들 하지만
方之市朝優(방지시조우) 도회지 생활보다 낫다오
逢年是爲樂(봉년시위락) 풍년 들면 그게 곧 즐거움이요
食力復何羞(식력부하수) 일군 대로 먹고사니 부끄럼 없다오
事簡元無累(사간원무루) 하는 일 간소하여 얽매임 없고
心閑少所求(심한소소구) 마음이 넉넉하여 욕심도 적소
靑門有瓜地(청문유과지) 문밖에 오이밭 일궈 놓고
我與爾將儔(아여이장주) 옛사람과 함께 한다오
- 신흠(申欽, 1566~1628), <시골살이의 즐거움[촌속(村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