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도 벼 까끄라기를 물고 있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텃밭 또는 시골에서 농사일을 거둔 경험이 있다면 적어보세요. 없다면 시골에서 어떤 경험을 해보고 싶은지 적어보세요.
2.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서로 협력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가능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를 적어보세요.
오늘 아침 본가 부모님과 식사를 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 중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까만 점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브이자 대형을 이루며 날아가는 여름 철새들이었습니다.
앞선 행렬이 대형을 이루며 무리 지어 간 뒤 끝인가 했는데 다음 무리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생명 활동의 엄숙함과 함께 함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장관(壯觀, 훌륭하여 볼 만한 광경)이었습니다.
늑대의 무리 또한 집단생활을 하는데 노약자, 병든 자, 임산부 등을 행렬의 앞에 세우고 리더는 뒤에서 무리를 이끌어간다고 하니 철새의 이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가 음력 10월 보름이었습니다. 구름 속에 새하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그 후광(後光)만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 11월 22일은 24절기 중 20번째이며 입동(立冬)과 대설(大雪) 사이에 위치한 소설(小雪, 작은 눈이 내림)입니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이곳 남쪽 지방은 단풍이 드는 시기가 느리긴 하지만 오늘 본가에 올라가며 산의 풍광을 보니 위쪽 지방은 제법 노랗고 붉게 잎들이 물든 것을 보니 더디긴 하지만 자연은 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농사는 우주 만물이 함께 참여하는 거룩한 일입니다. 농부의 부지런함과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하늘과 바람과 별, 땅속의 미생물, 나비, 거름, 토양, 한낮의 햇볕, 잠자리, 구름과 달, 별, 이슬, 눈, 새, 곤충, 지렁이, 우렁이, 오리 등이 서로 협력해야 윤기 나는 쌀 한 톨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확의 기쁨은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 아닌 온 생명이 함께 나누는 모두의 잔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게도 제 몫인 ‘벼 까끄라기를 물고 있’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 추수와 협력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白露郊原冷(백로교원랭) 이슬 내리자 들판은 서늘해지고
汚邪早稻黃(오사조도황) 낮은 땅 올벼들은 황금물결 이루었네
屯雲卷䆉稏(둔운권파아) 묶인 볏단은 구름처럼 쌓여 있고
積水見蒼茫(적수견창망) 파란 논물은 넓게 깔려 있네
出碓精如玉(출대정여옥) 방아 찧어 나온 쌀은 옥과 같아서
翻匙滑更香(번시활갱향) 수저에 담긴 밥이 윤기 나고 향긋하구나
前溪秋潦盡(전계추료진) 가을장마 지나간 앞개울에는
更有蟹銜芒(갱유해함망) 게도 벼 까끄라기를 물고 있구나
- 장유(張維, 1587-1638), <추수[확도(穫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