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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욘킴 Nov 16. 2024

침대 머리맡의 노트 - 4P

4P

첫 만 명이 들끓는 도심에는 혼자 조용히 붙박일 틈이 없다. 발 디딘 곳에 서고, 빈자리에 앉으며 밥벌이하는 삶에 나도 기어이 합류하며, 점심 먹는 사람들로 붐비는 내장탕 집에 줄을 선다. 낯선 사람의 입을 들락거린 수저와 물컵을 젖은 행주로 훔친 자리. 그 자리에 곧바로 다음 낯선 사람인 내가 앉는다.

어깨가 닿을락 말락 하는 옆 사람도, 뒷사람도 모두 내장탕을 먹는 식탁에서 나도 내장탕을 시킨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냅킨을 깔고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는 일련의 기계적인 동작들은 나의 낯가림 시퀀스.

내장탕이 금세 나온다. 살코기와 내장, 생명의 부속품들을 알뜰살뜰하게 그러모아 끓인 뻘건 뚝배기. 식사가 시작되면 앞사람의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신중히 속도를 맞춰가며 웃고 떠들고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늉을 한다. 그다지 즐겁지 않은 와중에도 능청스럽게 이죽거릴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이 잘 작동한다. 그러나 조금도 양이 줄지 않는 뚝배기. 밥을 잘 삼키지 못하는 건 낯가림 때문이다. 결국 식어버린 뚝배기 위로 먹는 시늉만 하던 숟가락질의 허술함이 드러난다.

- 입에 맞지 않나 봐요

의심 반 궁금함 반 섞인 낯선 눈빛이 뚝배기에 머문다. 낯가림은 잘 차려입은 옷에 난 구멍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걸까, 낯선 사람들은 바늘에 실을 꿴 채로 호시탐탐 수선해 줄 기회를 노린다. 구멍 난 옷을 얼른 여미며 다시 이죽거려 본다.

- 원래 양이 적어요.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깨끗하게 닦인 테이블을 홀로 차지하고 뜨끈한 뚝배기를 바닥까지 닥닥 긁어먹는 상상이 나를 꿰고 지나간다. 그의 신용카드로 그의 빈 뚝배기 값을, 나의 신용카드로 나의 먹다 만 뚝배기 값을 치르고, 계산대에 놓인 사탕 바구니에서 파인애플 사탕 하나를 집어 든다. 식당 문에 걸린 황동 종이 딸랑이고, 내 입 언저리를 어색하게 서성이기만 하던 수저와 물컵이 곧장 정리된다.

도시는 끊임없이 새 밥을 짓고, 닳고 닳은 수저를 놓으며 낯선 사람을 떠밀듯 앉힌다. 그 안에서 어떤 관계는 서로의 온도를 맞대며 미처 녹아들기도 전에 겉돌다 사라진다. 남은 건 닳고 닳은 수저질 속에도 끝내 삼키지 못하고 식어버린 흔적들뿐이다. 새콤한 파인애플 사탕을 혀 밑에 숨겨 넣으며 오늘의 헛헛한 기분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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