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로누와라
어제 많이 돌아다녀서 피곤했지만 얼른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했다. 내 카메라의 생사가 걱정된다. 밖으로 나가 툭툭 기사한테 물어봤다.
"카메라가 고장났는데 카메라 고칠수 있는데 알아요? 거기로 데려가주세요"
오케이라며 툭툭은 출발한다. 출발하고 보니 카메라 가게는 걸어서 겨우 10분정도긴 했지만 일단 내렸다. 가게에 들어가서 카메라를 보여주며 이런 상황인데 고칠수 있나요 하니 안 된단다. 옆집에 가도 똑같은 반응이다.
"여기는 고칠 수 있는 곳이 없고 캔디나 콜롬보로 가면 수리할 수 있을거에요"
그렇구나. 여긴 시골이라 고칠수 있는 곳이 아예 없구나. 내일 공항이랑 가까운 니곰보로 가서 좀 돌아보려고 했는데 콜롬보로 가서 일단 카메라부터 고쳐야겠다.
허탈하게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디노와 헤닝은 이제 잠에서 깨어났나보다. 오늘은 불교 유적이 있는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넬리야 어제는 우리하고 싶은데로 투어를 두개나 하면서 너 끌고 다녔으니까 오늘은 너의 날이야 너 하고 싶은데로 해. 우리는 따라갈께"
디노가 말한다. 사실 불교 유적지는 두개가 있었다. 아란푸루두라랑 폴로누와라. (사실 아직도 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다. 너무 길다.) 우리 셋 다 이름을 정확히 몰라서 P로 시작하는거 갈래 아님 A로 시작하는거 갈래 하면서 상의했다. 폴로누와라가 여기서 좀 더 가깝고 유적지가 너무 안퍼져 있고 모여있단다. 그리고 아란푸루두라는 여기서 좀 더 멀고 유적지가 엄청 크고 넓은 대신에 석가모니가 태어나서 훨씬 유명한 곳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A로 갈 생각이었는데 카메라도 이 모양이고 어제 너무 돌아다녀서 그런지 피곤해서 P로 가기로 했다. 셋이서 툭툭을 잡아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폴로누와라행 로컬 버스를 탔다. 버스로 한시간 반정도 걸려 폴로누와라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툭툭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전거 렌탈 할래요? 싸게 해줄께요"
일단 우리는 배가 고파 밥먹고 생각해본다고 하니 식당까지 따라온다. 끈질기다. 셋다 아침도 안먹고 온거라 배가 너무 고파 미디움 사이즈 피자한판씩을 각자 시켜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가니 그 아저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자전거 렌탈 할꺼죠? 가요"
우리는 마음이 바뀌었다. 너무 끈질기게 따라붙어 싫어져 그냥 걸어갈꺼라고 하니
"그럼 툭툭 투어는 어때요? 싸게 해줄께요"
그냥 이 아저씨가 얼마를 불러도 가기 싫어졌다. 우리는 거절하고 무시하며 가는데 착한 헤닝은 말을 자꾸 받아준다. 이 아저씨는 이제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티켓을 보여주며
"그럼 티켓까지 포함해서 싸게 해줄께요 어때요"
우리는 계속 걸어가는데 끝까지 따라온다.
"일단 우리 티켓사러 저기 갔다가 나와서 생각해볼께요"
하고 홱 돌아가버렸다. 티켓은 25불. 생각보다 비싸다. 티켓에는 찢을수 있는 티켓이 세개 붙어있는데 하나는 박물관 하나는 유적지 공원 마지막 하나는 불상을 보러 가는 티켓이다. 하나를 들어갈때마다 찢어가는 방식인거 같다. 일단 티켓 사는 곳 바로 앞에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원래 관심이 없지만 (나에게 한국 박물관은 흥미롭다. 역사를 아니까) 그냥 코스니까 들어갔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나니 다른 툭툭기사 아저씨가 투어 어떠냐고 해 가격 흥정을 해서 주요 유적지랑 불상까지 다 보고 다시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툭툭 안타고 걸어서는 이 찌는 날씨에 다 못걸어 다닌다. 아까 그 아저씨만 아니면 되는거다.
툭툭을 타고 주요 유적지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불교 국가답게 여기는 신성한 구역이라 불상을 보러 가는 곳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했다. 신발 벗고 다니는 건 참 좋아하지만 햇빛에 달궈진 돌을 밟고 다니는 건 너무 힘들었다. 신발을 벗고 종종 걸음으로 얼른 불상과 주위를 찍고 아뜨거 하면서 다시 신발을 신었다. 또 하나. 불상을 신성시 하는 나라인 만큼 불상을 등지고 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나는 딱히 종교는 없지만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 신자라 최대한 많은 불상을 찍어 사진을 어머니에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이제 점점 다들 더위에 걸어다니느라 지쳐가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와불을 보러 가는 것만 남았다. 와불을 보러 가는 길에 원숭이가 우릴 반긴다. 원숭이가 우릴 무서워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길래 너무 이뻐서 보고 있으니 그렇게 맑았던 하늘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덮이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얼른 와불을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갔다. 와불을 보고 사진찍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니 이미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카메라와 폰을 다 젖게 할 순 없었다. 그렇게 와불과 함께 30분동안 갖혀있었다.
한참 기다려도 그칠 생각을 안해 포기하고 다시 뛰어 툭툭을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이제 비가 그친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툭툭 기사에게 돈을 내니 기사 아저씨가 물어본다.
"티켓 다 썼는데 집에 가져 갈꺼에요?"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여 나는 말했다.
"당연하죠. 모든 티켓은 기념으로 가져가요"
하고 디노와 헤닝 티켓까지 세장 다 내가 가지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아까 그 아저씨가 아직 있다. 이제 알겠다. 아까 보여준 티켓은 이미 다 쓴 티켓이고 너무 싼 가격에 오케이 하는 순간 티켓을 보여줄 필요가 없는 자기만의 샛길로 돌아가서 와불만 보여주고 이리저리 좀 돌아다니다 나오는 것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런 피해 사례가 꽤 많았다. 다행히 우린 투어를 잘 마쳤다. 그런데 다시 담불라로 가는 버스가 생각보다 오지 않는다. 이제 너무 피곤해서 얼른 집에가서 씻고 쉬고 싶다. 30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이거 뭔가 잘못된건가 싶어서 헤닝이 뛰어서 앞쪽으로 알아보러 가니 버스가 온다. 헤닝없이 우리끼리 갈 순 없다.
"헤닝!!"
디노와 함께 외쳤다. 헤닝이 뛰어오고 다행히 셋이서 버스에 올라타고 다시 담불라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서 느낀점은 셋이 똑같았다.
"스리랑카에서 최악의 도시였던거 같애. 이렇게 투어하라고 푸쉬하고 사기 치는 도시는 여기 밖에 없었어. 스리랑카 사람들 원래 안그러는데 이상해"
어떻게 맨날 좋은 기억만 있을 수 있나. 이런일도 있지.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