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쓸데없는 말

돌반지와 돌발진

by 온기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았다. 우수형제가 어느새 돌을 맞이했다. 수의 길었던 니큐생활 후 다시 이어진 주기적인 입퇴원과 역류로 뒤덮인 지난날들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특히 수의 예기치 않은 역류를 보는 것은 심장이 발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심정이었다. 물론 행복한 날들도 있었다. 두 눈꺼풀이 눈물에 불어나 부은 날보다 소리 내어 웃었던 날이 더욱 많았다. 사소한 일에도 코를 찡긋하며 웃어 보이는 우와 반달 웃음을 짓는 수를 보고 있노라면 너희들이 나의 사랑스러운 새끼구나 싶었다.


돌잔치를 앞두고 병원에서 수의 검진 결과를 들은 날 나는 걷기 힘들 정도로 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머리가 멍하고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지며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은 있었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증상은 하루이틀이 지나도 쉽게 가시질 않았다. 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한의원을 모두 찾았지만 뚜렷한 병명을 듣지 못했고 수소문 끝에 찾은 다른 신경과에서 진단을 받았다. 진단명을 풀어서 말하자면 마음에서 생기는 어지러움증이었다.


아기들이 돌을 앞두고 이유 없이 고열이 나거나 발진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를 돌발진이라고 한다. 우수형제는 아직 돌발진 없이 무사히 지나가고 있지만 그것이 엄마인 내게 찾아왔다. 돌잔치에서 아이들은 가족들의 축복 속에 번쩍번쩍한 금반지를 손가락마다 끼우게 되었고 나는 짙은 화장이면에 우울함과 어지러움을 꼭꼭 감추어야만 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수의 질병을 어떻게 내려놓았냐고. 남편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깐. 간단했다. 전혀 새롭거나 놀라운 대답이 아니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대답이었다. 나는 겉으로는 내려놓았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속으로는 꼭꼭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임신 중기에 받았던 정밀초음파에서 수의 병명을 알고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수없이 괜찮은 척, 안 힘든 척, 잘 지내는 척을 하고 살아왔던가. 모두들 수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그런 아이를 돌보는 나를 먼저 걱정한 사람은 엄마 말고는 없었다. 내가 나를 챙겼어야 했는데 나마저 스스로를 놓아버린 채 일 년을 보냈다.


세상에서 밥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수에게 이유식을 줄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좁아진 식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언제 좁아질지 모르는 아이의 식도는 불안함의 대상이 되었다. 우는 유아식으로 넘어가는 단계까지 왔지만 수는 중기이유식에서 다시 초기이유식으로 돌아왔다. 중기이유식을 잘 삼켰던 그날, 이제는 이렇게만 하면 되겠다는 안도감과 환희를 느꼈다. 세상은 짓궂게도 이런 안정감이 겨우 찾아왔을 때 그것을 다시 흩트려 놓는다. 수는 지금까지 단 하루만 중기이유식을 먹었고 그날 이후 계속 구토를 했다. 식도가 다시 협착된지도 모르고 나는 계속 입자감이 있는 이유식을 삼켜주길 바랐던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했었다. 이건 나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다.


신경과에서 첫 진료를 보던 날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의사가 말했다.


힘드시죠?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이야기만 들어도 힘든데.


이렇게 상투적인 말을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 눈앞이 촉촉하게 흐려져 다시 또렷하게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진료를 마무리할 때 의사가 다시 말했다.


지금 본인에게 가장 쓸데없는 말은 '마음먹기에 달렸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해, 잘 이겨낼 거야'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소리하면 신경 쓰지 마세요.


이 말들은 모두 내가 아이를 출산한 후부터 지금까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나는 힘들기 때문에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없던 힘도 쥐어짜 내어서 지내야만 하는 줄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지내왔다. 그동안 썼던 글에도 이런 안타까운 모순이 담겨있지는 않았을까. 힘든 것은 참고 견뎌야 하고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삶이 참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내 삶의 방식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초가을 밤이다. 앞으로도 수의 식도협착증상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벌써 무너지면 안 되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런 생각들을 하는 나는 여전히 불안함을 손에 꼭 쥐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