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들을 놓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첫 미술관

by 온기

혼자서 거닐던 미술관을 아들과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두 명의 아들과 말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돌이켜보면 해프닝 같았던 그 시절 나에게 미술관은 안식처였다. 혼자서 살고 있었는데 더욱 처절하게 혼자가 되어야 했던 지난날들은 종종 무기력했고 쓸쓸했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눌 시답지 않은 누군가라도 필요하게 되자 나는 늘 슬픔의 끝에서 위로가 되었던 예술을 떠올렸을 테다. 침묵이 암묵적 약속인 미술관은 코로나 시절 더없이 훌륭한 장소였고 가만히 서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구멍 난 마음이 메꾸어지는 느낌이었다. 나와 작품 사이에는 단 한마디의 대화가 없어도 충분했다. 그런 공간에 이제 혼자가 아닌 우수형제와 함께 있다.


나는 그날 마치 여기가 엄마의 홈그라운드란다 하고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초대한 것 같았다. 오랜만에 아껴두었던 옷도 입고 화장도 하고 귀걸이도 하고 싶었다. 물론 그러지 못했다. 출산 후 처음으로 가는 미술관이라 엄마가 싸준 김밥을 들고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나의 아이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마주하듯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로 반짝여주길 바랐다.


아이들의 눈높이 맞춰 더욱 가까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통증을 달고 사는 남편과 나는 아기띠에 한 명씩 올려 기꺼이 우리의 허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돌도 안 지난 아기들이 알 리가 있을까. 처음에는 샛노란 벽면에 걸린 큰 그림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들여다보더니 전시 후반부에 다가갈수록 몸을 뒤틀기 시작했고 그림을 보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으며 심지어 내게 안긴 우는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버렸다. 덕분에 벽에 붙여진 작가의 코멘트도, 제목과 작품설명도 스치듯이 지나가버렸다. 기억나는 작품이 하나도 없는 전시는 처음이었다. 어린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는 우리 아이들보다 더 어린 아기들이 여럿 모여 있었는데 엄마들은 아이들의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시가 끝난 후 나에게 남은 것도 sns에 올릴법한 아이들과의 기념사진 몇 장뿐이었다.


그림책 넘기기를 좋아하는 우수형제에게 집에서 매일 보는 지루한 장난감 대신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고 아직 공감할 수 없는 아이들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출산 이전의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오랫동안 잃어버린 채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집안에서의 내 양쪽 어깨는 아이들의 침이나 분유 자국으로 얼룩져있고 무릎이 하염없이 튀어나온 바지를 입으며 때론 머리도 감지 못해서 기름진 얼굴을 한 노동자의 모습이지만 달라진 외형과 달리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수형제는 도착할 때까지 내내 잠을 청했고 나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친 소풍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깊은 수심의 사랑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전에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어쩌면 오랫동안 놓아버리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그 일들을 더욱 간절히 사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도 자정이 넘은 시각에 머리도 감지 못한 채 구부정한 자세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한 첫 미술관은 보물 찾기에 실패한 소풍처럼 아쉬움으로 끝났지만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과 계속 미술관을 찾을 예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의 아이들과 함께 나누며 이들에게도 엄마가 느꼈던 사랑이 서서히 스며들길 바란다.


혼자서 자유롭게 미술관을 다녔던 날들에게 당분간 작별을 고한다. 이제 내겐 미술관에 같이 갈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