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계절

4월의 입원일기

by 온기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던 이십 대 초반의 내 삶은 밤과 주말이 보장되지 않은 노동의 삶이었지만 현장으로 가는 목공반장님의 트럭 옆자리에 앉아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행복해하던 낭만적인 시절이기도 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보이지 않은 철장이 있는 병실 안에서 창 밖 너머 하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벚꽃을 보며 그때를 떠올린다. 한 달에 백만 원을 받고도 빚이 없었고 매일의 야근 속에서도 어쩌다 주어지는 휴가 같은 주말에는 하루 종일 바깥세상을 누비고 다녔던 젊디 젊었던 그 시절. 나는 어느덧 쌍둥이 엄마가 되어 있다.


어제 병원 복도와 로비, 아이에게 따스한 바람을 쐬어주고 싶어 잠깐 나갔던 야외공간 어딘가에서 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흔한 호흡기 바이러스이지만 아기는 새벽부터 끙끙대기 시작했고 체온이 38도를 넘어버렸다. 아직 말 못 하는 아이가 무슨 요구가 있었으랴. 일주일 내내 병실 안에서 벚꽃만 바라보다 답답했던 나의 마음을 달래고자 어제는 왜 그렇게 몰아서 돌아다녔는지. 수술을 앞둔 아기라는 것을 망각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일주일을 못 견디고 나름 평화롭던 병원생활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가족들에게는 아기 덕분이라고 했지만 내 덕분에 우리 모자는 1인실로 강제이동되었다. 격리 아닌 격리 생활. 아기는 최대한 문밖에 나오지 말아 달라는 안내를 받았고 나도 병실 안에서 내내 마스크를 써야만 했다. 나는 코로나와 같은 시기를 다시 맞이했다. 살면서 신혼여행을 제외하고 이만한 돈을 내고 호텔에 머물렀던 적이 없다. 호텔비에 맞먹는 돈을 내고 3일 동안 1인실에 머물러야만 한다. 밤에 잠을 자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비싼 금액이다. 지나간 나의 행적들을 곱씹으면 뭣하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덕분에 수는 큰 소리를 내어 울어도 되었고 마구 보채도 되었고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크게 들을 수 있었으며 나는 맘 졸이며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었고 간이소파지만 조금 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1인실이면 뷰가 더 좋아야 하는 것 아닌가? 여유롭게 살아보지 못한 사람의 팍팍한 마음일까.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올라왔던 날은 올림픽 대교와 한강이 보이는 야경이 멋진 2인실이었고 이동했던 다인실에서는 저 멀리 잠실타워와 벚꽃나무아래로 자전거를 타는 평화로운 풍경이 보였는데 1인실은 병원 주차장과 치열하게 붙어있는 약국뷰다. 멀리 벚꽃길이 보이긴 한다. 쌍둥이를 출산한 후 회복하기 위해 머물렀던 산부인과 1인실 병동과 똑같은 구조와 집기들이다. 그때 나는 침대에 누워서 바스러진 몸을 꼼짝도 못 한 채 누워있어야 했고 남편은 지금 내가 누워있는 소파에서 잠들었었다.


상황이 바뀌어 수가 이제 그 침대에 누워있고 내가 소파에 앉아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 가족이기에 기꺼이 하지만 자주는, 오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음식을 삼킬 수 없는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지수는 앞으로 내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미리, 여러 번 예약해 두었다. 자식의 삶이 엄마의 삶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 너무나도 어린 자식의 삶은 나의 삶 전부가 된다.


복도를 걷다가 머리 수술을 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어린아이가 이동침대에 누워 대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잠깐 스쳐 지나가며 보았을 뿐인데 크고 맑은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너무 슬퍼서 울컥했다. 멍하니 벽을 바라보며 밝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아이. 나는 병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내 자식보다 조금 더 아픈, 조금 더 많이 아픈 아이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세상에서 가장 미안한 위로일 것이다.


이렇게나마 태어난 수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병원 밖을 나와 평범한 아기들의 모습을 보면 이내 마음이 어둠으로 얼룩진다. 아이만 편안해질 수 있다면 호텔비용과 같은 병원비가 중요하나 싶기도 하지만 여유롭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치러야 할지도 모르고 보험도 되지 않기에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다가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방금 또 분유를 게워내고 잠든 수는 240ml를 한 번에 벌컥벌컥 마시는 식욕이 왕성한 아기이다. 지금은 90ml를 먹고 손바닥만큼 게워낸다. 누군가 그랬다. 식도폐쇄는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라고. 수와 함께 나도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미안함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으니깐 말이다.


나는 가끔씩 말한다. 수가 얼마나 멋진 어른이 되려고 이런 고통을 겪게 하냐고.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했지만 분명 다른 무언가를 선물 받았을 것이라고.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우선인데 수는 그 말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나도 큰 욕심이겠지. 엄마 바람 이제 바꾸지 않을게. 탈없이 건강하게만 자라줘 아가야. 내년에는 우리 손잡고 벚꽃길을 백보, 이백보, 천보 걸어가 보자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