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민 Feb 09. 2020

"여자처럼 먹네"

세상이 말했다.

초등학생이 되던 해, 아버지는 나에게 라면을 끓이는 방법보다 먼저 가르치신 것이 있었다.

'터프하게 라면 먹기'

라면을 터프하게 먹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니, 바로 면을 소리 내어 후루룩 먹는 것.

터프하게 말하자면 더럽게 먹는 것.


아버지는 '터프하게!'를 외치고는 곧바로 시범을 보여주셨다.

면을 적당하게 집고 고개를 밑으로 숙인 후, 입 속에 면을 넣고

'후룩후룩'

면을 한 움큼씩 먹을 때마다 고개를 움직이는 게 포인트처럼 보였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재밌어 보여 아버지처럼 라면을 먹었다.

내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아버지는 아주 커다랗게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니는 진짜 여자처럼 먹네.



남고에 입학하고 밥을 먹는데 앞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여자처럼'에 어이가 없어, 그럼 남자처럼 먹는 게 뭐냐고 묻자

'나처럼 안 먹는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또 멍해졌다.


식당 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고개를 박고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나는 터프하게 라면을 드시던 아버지가 떠올라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박고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국을 퍼 먹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개를 들고 밥을 먹은 적이 없다.

그때부터 누구에게 '무엇처럼 밥을 먹네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아버지는 아직도 소리를 내며 밥을 드신다.

나는 조금씩 터프해지고 있다. 평범해지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