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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민 Jan 23. 2020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19.02 - 20.01

19.02

대학 졸업을 했다. 느닷없이 공허해진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대학 동기는 '레알 백수'라는 댓글을 달았다. 조금 비참했다. 그 댓글을 읽어서가 아니라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어서였다. 나는 정말 '아무 직업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19.05

콘서트를 갔다. 공허해진 나를 위해 소중한 사람은 두 장의 티켓을 예매했다. 나는 이 사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믿기질 않는데 콘서트를 갔다는 것보다 누군가 나를 위해 그런 돈과 시간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떠올라 그만 행복해진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인가. 조금은 그렇다고 믿고 싶어 진다.


19.06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갑자기 무슨 다큐멘터리?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지원서를 쓰고 몇 번씩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날은 조금씩 떨리고 기대가 되었다. 아마 나는 그저 소속감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19.09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아동문학을 쓰면 '동화는 이렇게 쓰잖아', 감상문을 쓰면 '보통 이 정도 쓰잖아'하며 적당히 쓰려했는데 내가 만들고 싶은 건 이 정도만 하자는 선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작품은 똑같아서는 안 됐다. 사실 작년에 찍은 단편 영화를 볼 때의 기억이 영향이 컸다. 그 날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처음' '실험 영화' '비전공'이라는 변명으로 스토리, 촬영 구도, 촬영 과정의 어색함을 무마시키려 했다.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덜 부끄러웠고 조금 뿌듯했다. 물론 어설픈 영상이다.


19.10

취업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정말 내가 취업 준비를 한 걸까? NCS, 토익을 공부한 게 아니라 카피라이터를 구하는 곳을 알아봤었다. 가끔 면접을 보러 상암에 가거나 누나 집에 기어 들어갔다. 웃는 얼굴의 면접관들과 대화―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를 했다. 한껏 미소를 짓는 면접관의 표정이 기억난다. 나도 그 표정을 지은 적이 있는데 두 번 보지 않을 사람 앞에서 지은 표정이었다. 누나와 면접 어땠냐는 통화를 하면서 버스 앞자리에서 정장을 입은 채 울었다. 서울의 삶을 기대했던 내가 한심했다.


19.12

교보문고에서 잠시 일했다. 카운터 알바를 하며 느낀  사람들이 책을 엄청나게 산다는 것이었다. 분명 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떠들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것들에 갸우뚱하며 바코드를 찾았다. 혹시 당신들도 저처럼 책을 전시하나요. 혼자서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리며 하루 7시간 일했다. 그러던  전화가 왔다.

광고회사였다.


20.01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작은 광고회사를 다니고 있다. 점심을 먹을 때 다 같이 문을 열고 함께 먹는 규모의 회사. 직원 분들은 친절하고 커피를 좋아하신다. 가끔 회의를 하고 자주 담배를 피우신다. 나를 '누구 씨'라고 부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시킨다. 난 아직 명함이 없고 경험도 없다. 오래전부터 되고 싶었던 카피라이터가 되어 오히려 꿈이 사라진 이상한 기분이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담는 카피라이터가 되는 것으로 정하자.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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