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워커스/ 박완서 단편집 / 디 에센셜_다자이 오사무
'퇴사'에 로망을 갖게 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일'을 중요시하는 책이 드디어 나왔다.
이게 건강한 태도라는 것은 너무나 극명하다.
권외편집자를 읽자. 왜 일본의 생각은 남다르고 가슴을 건드리는 거지.
나는 왜 그 생각들을 따라가고 닮으려 할까
모든 것은 연결된다. 설사 엉터리라고 생각했던 실패라도.
그러니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을 버리자.
돈, 자유, 의미.
돈을 좇기보다 자유와 의미를 찾으며 일을 하자.
돈을 위한 일은 나의 삶을 얼룩지게 한다.
"비관은 기분이지만 낙관은 의지다"
변하자. 그리고 변하지 말자.
성장하면서 간직하는 나의 것을 갖자.
나를 위해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제는 모베러웍스의 '노동절 워크샵'을 다녀오고 오늘은 박완서 단편집을 읽는다.
문장, 잘 쓴 글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에 감정을 덧칠한다.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 속에 빠져있다는 걸 알아도 문장에 홀리면 어느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나 보다. 시대가 다르다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폭은 다르지 않다. 질투하고 그리워하고 연민하고 슬퍼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인간이 글로 감정을 만들어내는 능력, 깊이를 나는 가지고 싶다. 가짜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내 속에 그만한 것들이 담겨 바깥으로 뿜어져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동시에 글 속에 자신을 투영하기.
이야기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 수 있어도 자신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상태에 머물러야, 그럴 수가 있을까. 문장 하나를 읽을 때마다 혹은 끝낼 때마다 나는
어느 한 남자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자살 시도를 하고 벤치에 앉아있는 다자이 오사무. 아직 인간 실격을 읽지 않은 상태지만,
서문과 이어지는 첫 문장을 읽었는데 '부끄럼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기억한다.
이 글을 쓸 때도 아마 가라앉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기분이 어떤 색을 가졌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아주 깊은 색이겠지. 세상은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과 커다란 귀를 가진 사람이 섞여서 기고만장해졌다가 눈물을 흘리는 괴이한 모습을 지겹도록 만들고 부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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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이 느끼는 기분을 알아'라는 재수 없는 소리는 하기 싫다.
단지 '당신이 쓴 문장들이 당신의 시선을 느끼게 해 준다'라고 하고 싶다.
내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서 나를 다시 바꾸게 한다.
(나는 타인에게 너무 쉽게 이염되기를 반복하니까. 낯선 사람과 닿는 게 그래서 두려운가 보다.)
어떤 그림은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심장이 젤리처럼 쫀득해진다.
'좋은 글'도 같은 울림을 준다. 그 글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들고 두려움을 잃게 해 준다.
평안함을 주는 작품이 좋다. 그 속에 정신이 망가진 남자가 나와도 상관이 없다.
그저 문장이 그 남자를 쓰다듬어주고 보살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