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진 May 14. 2020

오늘 나는 상한 카레가 아니다!

홀로 멈춰 서야만 할 때

“이도진 님, 5인실 배정되었습니다.” 금세 카톡이 왔다. 온몸의 피가 발바닥까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후다닥 짐을 챙겨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로비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철희에게 말했다. “그냥 한다고 할 걸 그랬나? 죽으면 못 하잖아.” 철희는 눈을 흘겼지만 안심시키려는 듯 이내 미소 지었다.


저녁에는 내가 엄청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 기념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 나는 지인의 부탁으로 거기서 디제잉을 해야 했다. 음악을 찾고 좋은 흐름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기에 꽤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어깻죽지가 아파 찾은 병원에서 의사에게 느닷없이 ‘암’이란 단어를 건네받았다. 암. 모니터에 비친 내 배 속에는 괴랄하게 생긴 덩어리가 조영제에 물들어 있었다. 이미지가 말하는 바는 이러했다. ‘너는 손상됐어. 이제 일을 할 수 없어.’ 빼곡한 일정표, 그리고 얼마 전부터 같이 일하기로 한 친구 H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병원 텔레비전에는 탈세와 도박의 과거를 가진 개그맨들이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던지며 일하고 있었다. 아랫배가 싸해졌고 이어서 억울함이 치솟았다.


참, 파티! 어쩌면 가장 먼저 취소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연락을 최대한 미루다 전날 밤이 돼서야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녀는 담당자에게 상황도 설명하고 훌륭한 대타도 구해줬다.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었다. 왜 나는 연락을 최대한 미뤘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는 욕심 때문일까?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만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분리수거가 되지 않는 감정이 병실까지 따라왔다.


5인실은 다소 산만했지만, 중정이 가까워 볕바라기가 쉬웠다. 사방이 막힌 중정에서는 흘러가는 구름만 보였다. 벤치에 앉아서 그놈의 ‘일’ 생각을 했다. 당장 다음 주에 진행해야 하거나 잡무가 남은 프로젝트, 새 자리에서 론칭을 앞둔 서점, 그리고 잡지와 단행본들… 나는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분간 일할 수 없게 됐다고 알렸다. 통화하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점차 느려지고 낮아지면 내 미래도 그와 같아지는 것이 아닐까 조바심이 들었다. 목이 마를 때까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리는 ‘일’을 했다.


너절해진 기분으로 주저앉아 돌이켜보니 언제부터인가 일상은 일로만 가득 차 있던 것이었다. 20대에는 일을 배우는 시간과 일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의 연속이었고, 30대는 일을 하는 시간과 일을 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으로 구성된 하루를 살았다. 나만 그런가…? 아니었다. 나를 에워싼 모든 이들이 비슷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뒤통수만 보고 있는 경주. 숨이 무척이나 가쁜데 모두가 멈춰 선 것만 같은 이상한 착시. 트랙에서 이탈한 육체를 가진 이가 되고 보니 세상은 너무나 신기방기한 곳이었다.


어떻게든 별궁리를 찾아야 한다. 더 나은 미래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원초적인 주문을 이마에 써 붙이고 바둥바둥 애를 쓴 기간이 대략 7년 정도. 그간 소외당하던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라 암을 호출했나? 간섬유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초음파를 하던 의사는 밥그릇만 한 종양을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검사하는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넓은 부위는 방사선 치료도 어렵겠는데요.”


암세포는 혈관마저 꽉 움켜쥐고 있었다. 막연한 가능성과 좌절의 반복 이후에는 고열과 연관통[내부 장기에 염증이나 이상이 발생했을 때 그 장기와 감각신경을 공유하는 다른 신체 부위가 아픈 증상으로, 간암이나 간염 등 간 질환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생긴다]이 뒤를 이었다. 통증은 언어를 파괴하는 권능이 있었고, 여전히 당시를 표현할 길이 없다. 너무 아프면 불안감이나 망상이 사라진다는 긍정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전과 달리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녀석을 위해 최신 시술과 몇 가지의 약제가 거론되었지만 3기 환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나는 한 알에 3만 원인 신약을 매일 세 알씩 먹으며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링거를 꽂고 방사능 약물을 맞고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면 육체는 급격하게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철희는 요새 유행하는 호캉스에 빗대어 병캉스(병원+바캉스)를 하는 거라고 했지만 나는 중환자 티가 날까 봐 새로 산 향수를 매번 뿌렸다. 그만큼 절박하기도 했고 현실 인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팬티나 양말을 누군가 입혀줘야 하는 사람이 되니 환자 팔찌에 적힌 나이가 무척이나 새삼스러웠다. 닳지도 젖지도 않는 유포지에 적힌 ‘32세’. 그제야 내가 달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정지’. 30대에게 사용하면 어쩐지 실례일 것 같은 단어가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었다. 모든 식물이 깨어나는 3월이었고, 때늦은 눈이 한 번 왔고, 일하지 않는 나는 비로소 멈춰 서 있었다.






“병에 걸린 덕분에 여러 가지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깨닫는 게 없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이렇게 힘든 일을 겪는데 ‘결국 이 모양이 됐구나’ 하고 후회해봤자 나만 손해죠.”

- 키키 키린,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공개 시사회에서,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



철희는 종종 나에게 “즐거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잔소리를 했다. 고통스럽게 일을 하고, 일을 마친 후에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일을 떠올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와 달리 그는 작은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철희는 일이 끝나면 자신이 한 일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나에게 자랑하고 싶어 했다. 짬이 생기면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 나서거나, 괴상한 작가의 작업을 탐색하고, 귀여운 문구류를 수집하기도 했다. 전봇대 아래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내가 워낙 싫어해서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나라고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없겠느냐만, ‘오늘’의 달달함을 구하는 그에 비해 나는 쓴 뿌리를 씹는 사람이었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면서 언젠가 단맛이 우러나오리라 기대하며 씹는 쓴 뿌리. 구실을 만들어 ‘내일’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언젠가 철희가 그랬다. 운영하는 서점도 내가 만드는 책들도 다 싫다고. 그는 그것들의 무게가 암을 만들어냈다고 단정하게 확언했다. 우물쭈물 반박하긴 했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통원 치료가 가능해지자 나는 퇴원을 했다. 며칠간의 몸살 이후 나는 그놈의 단맛을 충실히 느껴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종이 상점으로 향했다. 한 일 년 전부터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해뒀던 사진이 있다. 어느 작가가 화려한 색의 종이로 만든 싱고늄. 그게 뭐라고 나는 그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작은 환희에 휩싸이곤 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식물 부장을 했던 게 이유 같다.)


맘에 드는 종이와 공작 도구를 집어 담고 보니 가격은 어느새 15만 원을 훌쩍 넘었다. 그 꾸러미가 부담스러웠지만 즐거움을 향한 나의 욕망의 크기를 확인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종이를 자르고 철사를 구부리고 풀을 발랐다. 청사과색 종이와 민트색 종이를 배색해 나뭇가지 비스무레한 것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라? 입안에 쓴맛이 고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 거야.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를 세심히 잘라 꽃도 만들어봤다. 마찬가지였다. 바스락거리는 이파리에 열정적인 관심을 보이는 건 우리 집 고양이들뿐이었다. 이건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파르페를 만화책에서 처음 접한 뒤 이 가게 저 가게 헤맸는데, 그 환상적인 디저트는 머릿속에나 있는 것임을 결국 깨달아버린 날의 느낌.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은 비슷한 옷을 입고 나를 놀리고 있었다.


탐구는 계속된다. 어느 날 같이 사는 남자가 핸드폰을 내밀며 힌트를 준다. 기관총을 닮은 쇳덩이는 주둥이에 가느다란 털실을 달고 있었다. 카펫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계란다. 불현듯 ‘유용성’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사용 가치가 단맛을 담보하는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종이 공작과는 다른 온도, 그러니까 카펫과 맞닿은 발바닥처럼 따스한 사회적 접촉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한편 ‘나 자신을 위한 단맛 찾기 대모험’에 타인의 존재나 관계를 당연하게 떠올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어쩐지 구슬프기도 하다. (성격 유형 INFJ의 숙명인 걸까?) 이런 씁쓸함을 제거하기 위해선 오래된 격언을 꺼내 먼지를 털어야 한다. “만약 네가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 호기심이 생긴다. 내 속도는 너무 느린데 보폭을 맞춰 함께 걸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그 누군가에게 줄 선물, 새 모양의 카펫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비장애인이 중심이 된 사회의 속도가 ‘정상’인지, 여기서 탈락하여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구축해가는 아픈 사람의 삶의 속도가 ‘비정상’인지 우리는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 유은순, 〈자가진단|포지티브〉, 전시 《틱-톡》 서문 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2016)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주인공 료코(아베 히로시 분)의 어머니(키키 키린 분)는 간만에 모인 아들네 가족을 위해 카레 우동을 만든다. 료코는 맛이 좋았는지 한 그릇 더 달라고 하다가 이 카레가 반년 전,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그가 얼굴을 찌푸린다. 어머니는 놀리듯 타이른다. “뭐 어때. 이미 먹은 거 괜찮아.” 전처(마키 요코 분)가 말을 잇는다. “남자는 유통기한에 쓸데없이 민감해.”


일생을 1.5리터 우유로 생각하고 유통기한을 세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자기의 끝을 아는 것. 다가올 죽음 앞에서 오늘을 사는 용기를 내는 것. 그런 유통기한에 민감한 것이라면 나는 언제나 찬성이다. 하지만 무거운 업무와 지나친 경쟁, 카페인 우울증[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로 SNS의 과도한 사용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생기는 우울증을 말한다] 같은 새로운 병이 만연한 오늘날, 유통기한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의 시간을 토막 내 10년 단위로 구획하고 다시 초, 중, 말로 쪼개는 현실. 하루하루 매 순간이 속도라는 칼로 피자처럼 조각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덤으로 붙은 투두리스트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입간판은 어떤가. 발병 이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마감과 파기가 무수히 중첩된 생활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불합리한 시대를 거국적으로 비판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변해버린 풍경 속에서 채집된 것들을 그저 읊고 있는 정도다. 높은 확률로 트랙에서 열심히 달리는 누군가가 획기적인 간암 치료제를 만들어낼 것이기에 판단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싶다. 나는 새내기 암환자다.






내가 간암 확진을 받고 ‘일’에 대해 좌절했던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보는 게 이 중구난방 글에 그나마 의미를 생성하는 일일 테다. ①자의나 타의로 구분되어 있던 인생의 유통기한이 한순간에 지워졌기 때문이다. ②나의 육체는 언제 파괴될지 모르기에 누군가는커녕 나 하나조차 건사할 수 있을까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③멀어져 가는 타인의 뒤통수를 보며 내가 멈추어 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④타인의 속도와 나의 속도가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네 개의 문장이 어딘가 아픈(플) 당신에게 작은 힌트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트랙을 나왔다. 멈춰 선 곳에서 비밀스러운 쪽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쪽지에는 일과 환자, 정상과 비정상, 다르게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암시가 적혀 있다. 전부를 해독하진 못했지만 마지막 줄은 다음과 같다. “오늘 당신은 상한 카레가 아니다.”


2019년 5월 26일. 창문엔 응원 편지가 붙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