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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훈 Apr 16. 2019

나쁜 어른들을 전시하는 안산 느와르 <악질경찰>

세월호 참사를 다룬 첫 번째 상업영화의 기억 방식

오프닝과 동시에 나오는 자막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2015년임을 못 박는다. 관객이 2015년이라는 자막을 확인한 다음에는 벽에 걸린 '행복한 안산'이라는 액자를 통해 여기가 경기도 안산시임을 추측케 한다. 영화의 시공간을 파악하기가 무섭게 '행복한 안산'이라 주장하는 액자는 이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난다. 2014년 그날의 침몰 이후 안산의 어딘가는 깊이 슬픔에 잠긴 것이 분명하다고 액자가 대신 말해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내내 거슬릴 정도로 상당히 어색한 'X박새끼'라는 욕설을 섞으며 등장하는 조필호(이선균 분)는 제목에서 지칭하는 바로 그 '악질경찰'이다. 혹시나 의심된다면 <악질경찰>의 영어 제목이 <Jo Pil-ho: The Dawning Rage>인 것을 확인하면 되겠다. 시작부터 ATM기를 털고, 내사과 경찰에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을 챙긴 도입부의 조필호는 '비리경찰'이 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악행을 반복적으로 일삼았음을 보여준다.

내사과 경찰이 압박을 준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듯한 태도의 조필호

이 영화는 이정범 감독의 전작 <아저씨>와 스토리의 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잘생긴) 옆집 아저씨가 소녀를 통해 각성해 역대급 액션을 남긴 전작과 비슷하게, (악질)경찰이 소녀를 통해 각성해 악인과 맞서는 악인이 되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겠다. <악질경찰>은 <아저씨>만큼 화려한 액션이 주는 쾌감도 없고, (배우 이선균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색한 욕설로 대표되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모습에다가, 분위기도 썩 잘 잡힌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악질경찰>이 무엇이 특별하냐 물으면 단연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번째 상업영화라는 점이다. 2014년 이후 특히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세월호를 다룬 영화는 여럿 나오고 있지만, 범죄영화의 틀 안에 넣어서 상업영화로 만들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필자가 아직 관람하지 못해 확신은 못하나, <악질경찰> 이후 개봉해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 <생일>의 경우에는 '가족'의 틀로 만들어낸 상업영화라 볼 수 있다.


세월호와 가족은 사실 참사 이후 남겨진 가족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이 된다. 그런데 범죄영화라니? 세월호를 둘러싼 '음모론'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다면 가능할까 싶은 이 장르를 통해 감독은 우리 사회의 '나쁜 어른'들을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과하다 싶은 설정과 대사 그리고 폭력은 영화 제목 <악질경찰>이 어쩌면 '나쁜 어른'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른을 어디 째려봐.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어른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노골적으로 스스로를 어른이라 칭하는 이들의 '나쁜' 대사가 반복된다. 위 대사는 어른은 째려봐도 되고, 어른은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되고(욕설, 반말 등), 어른은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담고 있을 거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고, 오직 그래야 한다는 강요만 존재할 뿐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가만히 있으라'고만 말한 어른들처럼 말이다.


한 술 더 떠서 극 중 대한민국 자산규모 1위 기업 '태성그룹' 정이향(송영창 분) 회장의 오른팔로 나오는 권태주(박해준 분)는 중요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미나(전소니 분)를 향해 "니가 살아 있는 게 불편해"라며 칼을 들이댄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꼼짝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미나의 머리 위에서 칼을 흔들어대는데,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며 살고 싶어 하는 미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룻바닥 위가 아니라 수면 아래에 갇힌 것만 같다.


'꼭꼭 감아라 머리카락 빠질라'는 아닐 테고, 반도체 공장까지 나온 것 보면... TS는 어딜 가리키는지 분명하다. 

바로 이 미나의 단짝 친구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지원(박소은 분)이었다. 지원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치킨(미나가 지원과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미나는 훔친 체육복으로 그 마음을 달랜다. 그런 지원이를 보내고도 계속 운영하고 있는 지원 아버지의 치킨집 이름은 '희망 호프'다. 희망, 호프(hope), 그것은 두 번을 반복해도 모자랄 그 간절한 가족과 친구의 마음을 미약하게나마 표현할 수 있는 간판이 아니었을까.


감독과 배우가 인터뷰를 통해서 이미 밝혔기에 결론을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악질경찰 조필호의 '참회'에 대한 영화다. 서두에서 밝힌 내용을 다시 빌려오면 나쁜 어른들의 참회에 관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한편에서는 <악질경찰>이 세월호를 소재로 쓰면서 너무 폭력적으로 그려냈다는 비판이 여럿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도 끊이질 않는 모 어른들의 폭력적 언행을 보고 있자니 그 비판이 온당한가 싶다. 오죽했으면 <악질경찰>을 관람한 유가족이 "(악질경찰 속의 폭력과 욕설 등) 그런 장면과 대사가 오히려 약해보이기까지 하다"라고 표현했을까.

"이것들도 어른이라고."

"이것들도 어른이라고" 내뱉는 미나의 대사는 영화가 하고자 한 게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시킨다. 사회적인 문제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현장감 있는 영상을 만들고, 누군가는 제기된 의혹들을 정리한 주장을 내놓고, 누군가는 범죄영화의 틀 안에도 넣어서 주조해보는 것. 필자는 영화를 통해 여러 사회적 문제, 특히 세월호 참사를 다시금 기억하기에 충분했고, 극장에서 관람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재미도 느꼈다. <악질경찰>을 꼬집자면 영화의 폭력성이 아니라 작위적인 대사와 불만족스러운 액션에 대한 문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다소 어렵고 생경한 방식을 택했을 때, 5년이라는 시간동안 충분히 이를 감안했을 거라 믿으며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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