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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그린 Mar 21. 2022

우리 집에 책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나만의 공간

코로나로 힘든 시기가 시작될 무렵인 2020년 겨울이었다. 당시 대구에서 플로리스트로 근무하던 나는 마흔을 한 달 앞두고 결혼과 동시에 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15년 이상 애정을 갖고 일했던 곳이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약해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다.


가까운 지인들을 모시고 약소하게 결혼식을 치른 후 남편이 살고 있는 천안이라는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뿐인 낯선 곳에 생활하면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동안 매일 출퇴근을 하며 바쁘게 지내다가 하던 일을 안 하게 되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시간만 흘려보내며 몇 달이 지났다.


그러다 문득 퇴사를 하고 시간이 많아지면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았었다는 게 생각났다.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마음 편히 여행을 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책으로나마 이곳저곳 간접 여행을 하며 마음을 달랬었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지만 시간이 없어서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퇴근 후 늦은 시간에 서점에 들러 책 냄새를 맡다 오는 일이 일상의 행복이었다. 언젠가 퇴사를 하게 된다면 좋아하는 책을 방해받지 않고 하루 종일 실컷 읽고 싶다는 게 나의 소박한 소원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 그렇게 바라던 기회가 내 앞에 주어졌는데 왜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자책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하루하루 시간만 흘려보내는 게 너무 아까웠고,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트를 꺼내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1. 그동안 사 모으기만 했던 책들을 한 권씩 읽어나가기.

2. 전국의 가보고 싶었던 책방 투어 겸 여행.

3. 나만의 작업실 또는 공간 만들기.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을 노트에 옮겨 적으니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꿈만 꾸었던 책방을 우리 집에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나는 그날 생각한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손님이 올 때가 아니면 비워두었던 신혼집의 작은방 하나에 책장 가득히 좋아하는 책을 꽂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작업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책방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책들을 주제별로 모으고 책방에서 본 것처럼 나만의 큐레이션도 해보았다. 좋아하는 책상과 의자까지 갖다 놓으니 나만의 아늑한 서재 겸 작업실이 완성되었다. 이후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오면서 이곳을 좋아하면서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나만의 책방이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고향인 대구에서부터 키우던 반려 식물인 몬스테라를 시작으로 천안에 와서 하나둘씩 늘어난 식물들을 베란다 알맞은 곳에 예쁘게 배치하고, 티 테이블과 의자도 두어서 식물들 속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베란다와 작은방을 바꾼 것만으로도 내가 머물던 집이 달라 보이고 실제로 하루가 달라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이 올 때까지 티브이를 보거나 할 일 없이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던 내가 책을 읽고 식물들을 돌보며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면서 점점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간과 사물에 관심을 갖고 생명을 주어서 살아나면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도 점점 살아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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