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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Sep 21. 2019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를 읽으며

글쓰는 사람들은 모두 개복치를 닮았다.

사실 이 책은 지금 첫 장 프롤로그에 머물러있다.

화장실에서 호기롭게 펼쳤지만 글 쓸 '내용'이 없는 글쟁이, 내용 없는 삶 이라는 문장에 속된 말로 맛탱이가 가버려 더이상 읽지 않고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볼일을 끝내버렸으니까.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으레 '개인적으로 내신 책은 있으세요?', '출간 계획은 없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쿨한척 '생각이 없어요..'라고 얘기하지만 출간제의가 들어온 적은 당연히 없고 제대로 된 작업은 생각하지도 않는 완전 게으른 사람이라 그저 몇 장의 원고청탁, 서평, 원고대행 등 작은 글삯을 받는 일이라면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8년동안 꾸준히 쓴 일기장을 들추며 뭐하나 건질 게 없나 예전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읽으며 이런 소재는 어떨까? 고민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나는 내용이 없는 삶이라 도무지 어떤 글을 쓴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연재할 수 없었다.

내용이 없다는 말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나의 좋은 핑계동무였다.

그런데 그 신랄하면서도 서글픈 이유를 이 책에서 화장실에서 만나다니...


벌써 두 달 전 일이다.

독서 관련 연재를 맡았고 다섯편 정도를 쓴 뒤 도망치듯 그만두겠다 선언했다.

글재주가 부족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경.험'에 기반한 글을 쓴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내가 가진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전달하면서 재미까지 주고 싶었지만 나는 독서와 관련되어 어떤 멋진 경험도 전무했고 나 또한 독서가 독서지 도대체 어떤 이유를 들먹이면서 책읽기는 신난다. 독서는 과거와 나를 이어주는 ... 그런 말을 하는 게 영 편치가 않았다.

그리고 워낙 삶이 단조롭고 조용해 연재를 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어떻게든 책방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나의 삶을 탈탈털어 글의 형태를 만들어냈지만 원고를 보내고 나면 뱃속이 울렁거려 잠을 잘수가 없었다. 나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긴 하는걸까. 진심을 담아 썼지만 이딴 경험은 남들도 다하는 것일텐데 난 이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자격까지 꺼내들고 와 스스로를 괴롭혔다.


'경험도 없고 글쓰기도 부족하고 못하겠어요.' 란 말을 전화에 대고 했는데 그 순간 그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더 좋은 글재주로 삶을 기반으로 한 사람들의 마음을 긁어줄 멋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생각과 이제는 수요일이 다가오는 달력을 바라보며 가슴 졸일 필요가 없는 이유에서였다.


처음 브런치작가가 되었을때도 나는 믿을 수 없는 마음에 심장이 두방망이 쳤다. 쓸 곳이 생겼고 이유가 생겼으니 이야기를 좀 써볼까? 했지만 책방 2층에 살며 1층책방 2층 집만 오가고 아이가 다니는 동네 유치원을 가는 길을 제외하곤 큰 동선도 없는 삶에 늘 노트북 앞에서 카톡으로 일을 주고받는 내게 지금은 어느때보다 경험도 열정적인 연애를 할 (하면 큰일난다.)상황도 아니니 나의 삶은 점점 좁아지고 표현력도 줄어가는 게 내 현실이다. 쥐어짜내도 할 이야기가 없다.


지금 제일 잘 할 수 있는건 6살 육아 이야기와 프리랜서의 프리는 일을 많이 하기 위해 시간이 프리다. 이정도


집순이의 유전자는 강력한지 개복치집순이 엄마와 딸은 밖에 나갈 무얼 해볼 생각도 없이 그저 조용히 앉아 조용한 동네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다. 아침과 저녁엔 요가와 줌바댄스로 장렬하게 혼자 시간을 잠시 보내고 책방에 앉아 하원까지 일을 한다. 늘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아이와 집으로 돌아온다.

음 .. 아이가 좀 더 크면 ? 수영을 하러 다니면 ? 밖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면 ? 모르겠다. 그 조그만 생활의 변화에도 내 이야기가 생길지 내용을 보탤 일종의 에피소드에서 나는 전할 말들이 생길련지


지금은 조용히 개복치 성정을 닮은 마음을 일로 풀며 마감 후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오케이가 떨어질때까지 벌벌 떠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1층책방 2층 집만 오가는 생존법으로 버틸 수 밖에 !

글을 쓸 때마다 이렇게나 할 말이 없다니 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언젠가 나의 좁아터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쓸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 책 참 재미있다. 개복치 1과 개복치 2에게도 이 책을 소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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