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 갈 집은 전 집보다 작았다.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넓은 곳으로, 더 깨끗한 곳으로, 그리고 서울로 간다면 정말 좋겠지만, 비슷한 형편에서 무언가를 더 원하는 지금은 되려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직장과 가까운 서울을 택했고, 좁은 평수라는 리스크를 선택했다.
게임에서 캐릭터를 만들 때가 생각났다. 정해진 능력치의 절댓값 아래에서 힘, 민첩성, 지능 따위를 배분하는 느낌. 전사일 경우에는 힘을 높이고, 궁수는 민첩성을 높였다. 마법사는 지능이었지. 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한된 능력치 내에서 서울이라는 재화를 골랐다. 나는 어떤 종류의 캐릭터일까.
이사를 위해 정리가 필요했다. 집을 들여다보니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나왔다. 나는 그냥 살았던 것 같은데, 이들은 어째서 이만큼이나 증식했을까? 중구난방으로 방을 뒤집어엎고 보니 혼란스러웠다. 구분이 필요했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고, 신은 그것을 하늘과 땅, 밤과 낮, 해와 달 따위로 나누었지. 그도 필시, 보다 좁아지는 우주로 이사 가기 위해 그 혼돈을 정돈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하늘과 땅, 밤과 낮 등으로 혼돈을 나눌 수 없었기에,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으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쓰지 않는 미니오븐과 와플 기기, 온갖 전자부품들. 우선 버리지 말자. 어릴 적의 일기와 추억이 담겨있는 기념품들. 분명 다시 꺼내 볼 일은 없지만 버릴 수 없다. 이제는 모으지 않지만, 한동안 열심히 모았던 세계 각국의 마그넷들. 아깝다. 이렇다 보니 정작 버릴 것들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조물주의 사랑과도 같은 것일까.
이어, 나는 잡동사니가 한가득 담겨있던 캐리어를 뒤집어엎었다. 온갖 종류의 노트와 학용품, 작은 물건들이 쏟아진다. 습작시를 썼던 노트, 일기장, 쓰다 만 풀과 펜들. 정리를 하기 위해 노트를 열어보다 한동안 그 노트에 적혀 있는 시간대로 추억여행을 떠나버리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잡동사니를 파헤치자, 오래전 여자 친구의 편지가 나왔다. 5년도 전에 사귀었던 사람이다. 다 버린 줄 알았는데 남아있는 것이 있구나. 편지의 내용은 단순했다 (어쩌면 뻔했다). 생일을 축하하는 문구와 사랑한다는 내용이 버무려져, 달콤한 어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관전자의 마음으로 그 편지를 읽어 내렸다. 이제는 끝나버린 관계의 편지. 그 문장들은 이제 갈 길을 잃고 막연한 달콤함을 풍겨내고 있었다. 버릴 것인가?
나는 오래전 그녀를 떠올리려 했다. 막연히 생각나는 것은 우리의 관계가 굉장히 심심하게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관계의 말미에 나는 우리들의 관계를 마치 오래된 역사로 여겼던 것 같다. 둘의 관계가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알게 된 것은, 점차 앞으로의 이야기보다 예전의 이야기를 더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예전엔 좋았는 데부터 시작하여 결국엔 예전 서로의 어떤 잘못과 치부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다 이미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다시 복습하고, 서로 어설픈 시도로 무마하려 했다. 위태위태한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추억은 마치 옛 왕조의 찬란한 시절을 돌이켜보는 것처럼 낡아버렸다.
그 아이는 영수증을 모았다. 상품명과 비용, 날짜가 정리되어 있는 작은 쪼가리들을 모아 일별/월별로 풀칠을 하여 노트에 붙였다. 여기에 엑셀로 유형별 비용을 계산하여 한 달 지출을 노트 한 구석에 프린트해 붙여 두었다. 귀찮지 않아?라고 물으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소비할 자격이 있는 거야.라고 본인의 경제 철학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부터 회사에 채용되어 총무 일을 했는데, 아마 회사 비용을 처리하던 습관을 사적 영역에도 적용한 것일 테이다.
반면 나는 소비의 아이콘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첫 단추의 영향이 컸다. 처음 한 달 월급은 내 마음대로 써야지 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두 달, 반년, 1년이 되어가며 방탕한 소비습관은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렸다. 막연한 낙관주의적 성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습관을 바로잡아보고자 그녀의 건전한 습관을 짧게나마 따라 해 보려 했다. 애석하게도 노트와 풀 값만 날리고 말았다. 실패의 원인은 꾸준함의 부재와 부정확한 정산이 컸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나 본인이 그렇게 꼼꼼한 성향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리라.
혹시 예전에 정리했던 영수증 노트가 있을까. 잡동사니 더미를 비롯해 다 쓴 노트들 사이를 뒤적뒤적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버린 기억도 없는데 버려진 물건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정작 진작 버렸어야 할 물건만 남아 있다.
편지를 어디에도 구분하지 않은 채 남은 정리를 시작했다.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으로 시작했던 구분은 점차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버릴 것, 팔 것, 이사 가기 전까지 더 쓰고 버릴 것(화장품류), 본가로 가져갈 것 따위. 그렇게 정리를 끝내고 나니 하루가 모두 가버렸다. 너무 힘들군. 신도 그래서 일요일은 휴일로 두었겠지. 고된 일이다.
나는 다시 어디에도 구분하지 않았던 전 여자 친구의 편지를 읽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관계의 영수증이다. 이 편지를 주고받던 당시에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생각난다. 우리는 사랑했었고, 그것이 얼마나 달콤했는지를 기억한다. 이 편지는 그것들을 영수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버릴 것에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