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생각 한 자락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마지막 교정을 넘겼다.
짧지 않은 2년 반,
말 많고 요구사항 디테일한 내 성격을 웃으며 받아주던 디자이너와 시원 섭섭한 작별인사를 나눴다.
"진짜 마지막이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지나가는 길에 꼭 한번 놀러 오세요."
매번 한컷의 사진에 서너 가지 요리를 해달라 요구하며 들들 볶아대도 참 즐거운 촬영이라고 말해주던 푸드스타일리스트 실장님과도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괜스레 눈물이 난다는 실장님의 말에 나도 덩달아 코끝이 찡해졌다.
음식 촬영이 처음이라 우왕좌왕 헤매도 화 한번 내지 않고 가르쳐주시던 촬영 실장님과도 한동안의 작별을 고했다. 한참이나 나이 많으신 실장님이 꼭 다시 보자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신다.
"크리스마스 촬영 때 봬요. 담당 아니더라도 꼭 같이 놀러 오셔야 돼요."
그동안 수 없는 마감을 했고 수 없는 끝을 봐왔다. 그런데 이번 이별은 참 힘들었고, 너무 길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임자의 퇴사로 내가 소식지를 발간하기 시작한것이 2014년 9월부터였으니 2016년 8월까지 총 34권의 소식지가 발행됐다. 수많은 오프라인 매체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우리 회사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어느새 인쇄물이 옛날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했고, 새로움을 발 빠르게 전달하는데 부적합한 매체로 대우받고 있다. 알지만, 모두 알고 있지만 이 소식지 이전에 인쇄물 작업을 오래 해온터라 분위기에 떠밀리듯 끝내는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것은 당연한 것 같다.
한동안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허우적거렸다. 모든 것이 방전된 듯했고,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2주에 한번 찾아오던 피 말리는 마감이 없어졌으니, 발바닥 땀나게 뛰어다니던 취재가 줄어들게 됐으니 속 시원하지 않느냐는 소리들이 웅웅웅 귓가에 울렸다.
솔직히 격주간지 소식지 작업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일이 너무 좋았다. 인쇄된 소식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커다란 집게가 더 이상 벌리기 힘들 만큼 벌어져 애를 써야 겨우 붙들 수 있을 정도로 모아진 것을 보면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지나가며 던지는 잘 보고 있다는 인사는 동기가 됐고, 단 한 번의 마감 지연도 없었다는 것은 자부심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할 시간이다.
툭툭 털어버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어쩐지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 이 글을 남긴다.
수많은 취재지에서 만났던 얼굴들을 곱씹어 본다. 순박했고 따뜻했던 얼굴들.
한낮 내리쬐던 태양에 숨이 턱턱 막히던 하우스 안,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에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것도 곤욕이던 논, 주책 맞게 입고 간 반바지 탓에 다리로 달려드는 벌레를 피해 기겁하고 뛰어다니던 밭, 가까이 오지 말라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겁 많던 소들, 주인 따르는 강아지들처럼 정신없이 달려들던 산양들, 피와 땀으로 키워준 고마운 농산물들. 하나도 잊지 않고 소중히 되새기며 인사를 보낸다.
누군가에는 단순히 종이 몇 장인 소식지였겠지만 나에겐 그 속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었기에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내듯 천천히 인사를 보낸다.
올해를 시작하며 노트 제일 첫 장에 '소풍 온 듯 일 년을 보내자'라는 말을 써뒀는데 8월이 되어 돌아보니 소풍은커녕 매번 급한 마감과 놓지 못하는 것들과의 전쟁 같은 하루하루였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시기에 딱 맞게 잘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새로운 일이 시작돼도 난 또 나름 잘 적응해나갈 것이다. 누구보다 씩씩하게! 독하게!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