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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 여행자 Jul 29. 2021

그저 보여주는 것만 볼 뿐

샛길로 빠지다, F1963 - 대나무 숲으로 꾸민 달빛 정원


실내 공간뿐만 아니라 야외 정원이 있다고 알고 왔지만 잠시만 나가도 땀이 흘러내리는 폭염에 야외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하늘로 쭉쭉 뻗어 있는 초록의 대나무 숲을 향한 호기심은 뜨거운 햇살을 이겨냈다. 와이어 공장의 콘셉트를 살려 꾸민 정원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아기자기한 대나무 숲길로 조성되었다. 곧으면서도 유연한 대나무를 뻗어내기 위해서 곳곳마다 받침대와 지지대를 연결해 숲 전체가 하나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대나무 키를 키우고 가꾸려면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겠니?"

엄마의 시선은 항상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노동의 노고에 대한 안쓰러움에 맞춰져 있다.

"지진이 나면 대나무 밭으로 피신하라는 말이 있대요. 대나무 뿌리가 한데 엉겨 있어 땅이 갈라지지가 않는다는대요."

비가 한 번 내리면 한 마디씩 쑥쑥 자라는 대나무의 성장은 말 그대로 우후 죽순이란다. 빽빽하게 자라는 일반 대나무 숲과는 달리 보기 좋게 조성된 대나무를 붙들기 위한 손질은 엄청났다. 가로와 세로를 씨줄과 날줄처럼 지지대와 받침대를 총동원해 나무들을 엮었다. 그럼에도 자연적으로 서로 기대어 자라는 대나무와 달리 보기 좋게 하기 위한 목적에 충실한 정원의 대나무 숲은 멀끔하기는 한데 왠지 불안해 보였다.

이건 단지 내 협소한 생각일 뿐인지도 모른다. 애초의 콘셉트처럼 와이어같은 부드러운 대나무는 지금 최대한 자연스럽게 성장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뿌리로 한 번 더 단단히 뭉쳐 있을지 모를 테니까. 정원의 땅속까지는 볼 수 없으니까 우리는 그저 하늘 끝까지 뻗어나갈 것 같은 대나무 꼭대기만을 젖혀서 올려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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