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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 여행자 Jul 29. 2021

달달한 쉼표를 찍어가는 시간

샛길로 빠지다, F1963 - 카페 테라로사


널찍한 카페 테라로사는 와이어 공장이었다는 이곳의 흔적을 가장 생생하게 활용한 곳이었다. 중간중간 벽돌 기둥부터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발전기, 얼룩진 기름 자국이 남아 있는 바닥의 빛바랜 페인트 흔적까지 작업장의 거칠고도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졌다. 입구의 와이어 설치작품에서부터 공장 철판으로 단장된 커피 바와 테이블, 발전기와 와이어를 감는 보빈이 군데군데 장식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지붕 골조가 드러난 높은 천정과 철재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죽 의자의 클래식한 느낌과는 엇박자 같은 조화를 이루어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해 냈다.  와이어 공장과 카페의 접점은 빈티지도 아닌 새로운 터프함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물론 이 시국이 아니었다면 미어터지고도 남을 공간이었겠지만 다른 곳에 비해 이곳 카페만큼은 그래도 사람들이 점점 들어차고 있었다. 줄을 서서 빵과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들과 쉴 사이 없이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기가 목조와 철재가 뒤섞인 천정 아래에서 끊임없이 퍼지고 있었다. 버려질 뻔했다는 공장은 여전히 생산과 소비에 충실하게 계속 가동 중이었다.

일흔까지 꽉 채워 일을 쉼 없이 지속해 오신 엄마는 일을 놓고 난 뒤에도 여전히 당신이 할 수 있는 마땅한 일거리를 찾아 밤낮으로 머릿속을 채우고 계셨다. 물론 가족들도 모두 엄마가 가만히 계시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넘치는 열정과 앞선 그 의욕을 따랐다가는 그나마 겨우 건사하고 있는 엄마의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씩 내려놓고 새로운 방식의 생활패턴을 잡아가야 하셔야 한다는 설득을 내세울 참이었다. 우선 엄마의 지난 시간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드리고 나서. 라테에 시럽을 톡톡 뿌렸다. 좋아하시는 달달함 같은 쉼표가 지금 엄마의 남은 시간에 살포시 얹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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