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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 여행자 Jul 29. 2021

중고 서점에서 인생 본전을 찾다

샛길로 빠지다, F1963- 중고서점예스 24


국내 최대의 중고서점이라고 했다. 600만 평에 활자 인쇄 프로세스부터 최신 기술의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책과 출판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듯 책을 볼 수 있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물과 같은 공간. 내가 가장 기대했던 20만 권의 책 숲, 이곳 중고서점이었다.

압도하는 규모에 걸맞게 넘쳐나는 책들 속에서 길을 잃을 것 같았다. 한 번 서가를 쭉 스캔한 뒤 미리 뽑아온 책 리스트를 검색했다.

"정서적인 사람들이 좋아할 곳이네."

천천히 천정과 거의 맞닿은 서가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던 엄마는 곧 손주들이 좋아할 유아용 장난감 진열대와 어린이 책 코너로 걸음을 옮기셨다. 혼자 왔다면 자리 하나 차지하고 이 호젓한 책 기둥 사이에서 퍼질러 앉았겠지만 나는 내 호기심 유전자의 절반이 엄마한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딸이었다.

"어지간히 큰 장소가 아니면 이 많은 책을 어째 다 진열하겠노. 기가 막히게 잘 잡았네."

오늘은 엄마와의 일일 나들이답게 가이드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둘이 손 잡고 책 숲을 거닐었다.

"손해보지 않고 사는 법? 엄마 인생 본전 많이 잃으셨나 보네요."

엄마 손에 들려 있던 한 권의 책. 이 넓디 넓은 서점에서 유일하게 고르신 책이었다. 고개를 갸웃 돌리고 들여다본 표지의 제목이 짠하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내려놓고 앞서 가시는 뒷모습을 좇으며 "지금부터 쉬면서 만회하시면 되죠" 너스레를 떨어본다.

잠시 떼어놓은 그 조막손을 다시 붙잡아본다. 안쓰러움을 넘어서 죄스러워야 할 처지인 내 손 또한 수많은 책임과 거친 일을 감당해 온 그 작은 손을 다시 채워줄 게 없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커피 한 잔은 사 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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