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받아 들고 온 때아닌 메주 소쿠리를 들여다본 식구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이제 겨우 무더위가 한 발짝 물러나고 가을은 아직 깃들지도 않는 이른 9월, 철 모르는 메주를 두고 한 목소리로 비난을 쏟아냈다.
“아직 더위도 가시지 않은 이 계절에 메주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타박에서부터 “저 메주가 안 썩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엄포에 급기야 “이맘때 메주를 띄우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선생이냐”에 이르는, 강사의 자질로까지 핀잔의 수위는 가을 하늘만큼 높아져 갔다.
메주 타박이 소쿠리째 쏟아지는 데에는 일리 있는 연유가 있었다. 매년 집에서 만들던 메주는 온전히 어머니와 아버지 몫이었다. 두 분이 장 가르기 하던 옆에서 거든 물심부름이 고작인, 한 번도 제대로 된 장을 담가본 적 없던 딸이 만들어 왔다는 메주였으니 얼마나 미덥지 않았을까. 식구들의 핀잔은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었다.
봄부터 다니기 시작한 발효반 장 담그기 수업에서 만들어 온 메주는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시골 처마나 여염집에 매달려 있는 흔한 메주의 외양이 아니라 동글동글 막대기 모양으로 빚은, 개량형 스타일이었다. 평생 빚어온 숙련자의 눈엔 소꿉놀이 마냥 조물딱거린 것에 지나지 않아 보였을 터이다. 그게 다 원활한 겉마르기와 속까지 곰팡이를 피워 잘 띄우기 위한 것이며, 알고 보면 지혜가 듬뿍 담긴 나름대로 ‘이유 있는 까닭’에서 만들어진 형태라는 설득도 그저 구차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많은 계절을 두고 하필 이 여름 끝자락에 때아닌 메주를 빚게 했는지 새삼스레 야속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에게 메주를 떠맡긴 조원들의 배려마저 원망스러워졌다. 어쨌든 구박덩이 신세로 전락했어도 더운 날에 불린 콩을 불 피운 솥에 삶고, 벅찬 방망이질로 땀 흘려가며 찧은, 나름 정성으로 빚은 메주들이었다. 함께 손을 모은 조원들에게 ‘잘 띄워오겠다’고 큰소리 한껏 치고받아온 내 호기로움은 어느새 무식한 자만이 저지를 수 있는 ‘자초한 무모함’으로 전락했다. 반드시 무사히 잘 띄워야 하는 사명감 버금가는 이유 하나가 추가됐다.
몇 가닥의 짚을 깔고 앉은 채 실려 온 메주들은 애초부터 볕으로부터 버림받았다. 하늘이 도와주기를 외면했다. 첫날부터 내리 사흘 동안 비가 그치지 않더니 햇살 한 자락이 간절해지는 잔뜩 흐린 날만 계속됐다. 볕 보기는 이미 글러 버린 제 신세를 아는지 금세 곰팡이로 뒤덮일 처량함을 품기 시작했다. 햇볕 대신 바람으로 겉마르기를 해야 할 위급 상황이었다. 선풍기 바람을 돌려가며 습기를 날려주고, 곰팡이가 자리 잡을세라 수시로 굴려 가며 눌러앉을 틈 없이 엉덩이를 옮겨 주었다.
일주일 동안 오락가락 내리는 비는 볕이 드는가 싶다가도 소나기 한 자락 쏟아붓는 변덕을 부렸다. 그 볕 한 자락 쬐려다 예고 없는 소나기 세례라도 맞을까 밖에 내다 놓을 엄두는 애초에 거두었다. 때마침 아침밥도 뜨는 둥 마는 중 나섰다가 늦은 밤에 귀가하는 내 일상도 나름대로 종종거리고 있던 터였다.
식구들 손을 빌리기에는 타박 세례로 상해 있던 마음이 꽁한 오기를 부렸다. 차마 ‘좀 봐달라’는 부탁도 아꼈다. 겨를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면서도 한낮에 잠깐씩 내리비치던 햇살은 왜 그리 아쉽고 아깝던지 아침에 내다 놓지 않고 나온 게 아쉬워 마음만 동동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햇빛 좋은 날들도 무심히 흘려보내고 일주일에 이틀은 빠짐없이 내리는 비가 이어지는 나날 속이었다. 남의 아이 키우듯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는 심정이 될 즈음 애꿎은 메주는 될 대로 되라는 상태로 방치됐다.
“각 조의 메주 상태가 어떤지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
강사의 중간 점검 메시지가 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방충망에 고이 싸여 잘 뜨고 있는 축복받은 메주가 올라왔다. 짚으로 꼰 새끼줄에 조롱조롱 매달려 황금색으로 말려지고 있는 건강한 메주도 있고, 백배의 부담감으로 책임지고 있는 나의 메주들보다 훨씬 우월했다. 보기만 해도 실한 금빛 자태가 흘러넘쳤다.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아버지, 비도 오고 방이 꿉꿉한데 제 방에 불 좀 넣어주세요.”
여전히 버리지 못한 꼬장꼬장한 자존심에 차마 메주 때문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반반한 방바닥을 메주에게 양보하고 허리가 뻐근해지는 불편한 침대 신세를 자처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만했다.
늦여름에 지핀 아궁이 불에 한껏 달아오른 아랫목의 열기로 숨이 턱턱 막혔다. 자다가 가슴께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을 밤바람으로 식혀가며 수시로 바깥을 들락거렸다. 며칠 밤을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며 시달렸지만, 덕분에 메주는 까닥까닥 잘 말려지고 있었다. 분명히 속도 잘 뜨고 있을 거다. 내가 이렇게 떠 죽겠는데 저는 오죽이나 잘 썩고 있겠는가.
한밤중의 부채질로 가슴속까지 차오르는 열기를 삭히면서 문득, 조바심을 내며 동동거리는 이 애물단지가 날아오는 공처럼 안겼다. 숙제처럼 떠안은 메주 띄우기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자식 기르기 같다는 깨달음이 손부채질로 일으킨 바람과 함께 솟구쳤다.
“억울하시면 엄마도 제 딸로 태어나시든가요.”
따지고 드는 과년한 딸의 철없는 억지에 막히시면 엄마는 “자식도 안 키워본 네가 뭘 알겠니?”라는 한숨으로 단번에 갈음해 버리셨다. 그렇게 억울해했던, 경험치를 넘어서는 부모 마음을 콩 비린내 가시지 않은 메주가 일깨워주고 있었다. 산고의 괴로움은 차치하고, 기르며 애쓰던 정성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는 그 속을 헤아려보게 하는 것이었다.
바람과 햇살을 제 몸에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속을 들썩이고 떠가는 동안 이렇게 애타는 심정으로 지켜봤을 테다. 깊숙이 익어가기를 무던히 기원하고 격려했을 것이다. 새삼스레 지나간 부모의 정성 어린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쓰고 있었다. 메주는 꼬릿꼬릿한 냄새를 피우고 유익한 균들을 사방에 퍼뜨리며 나를 숙성시키고 철들게 했다. 동거하는 한 달 동안 나와 메주는 발효의 시간을 함께 건너고 있었다.
“메주 띄우는 동안 제 속이 다 뜨는 줄 알았어요. 곰팡이가 마구 피어오르는데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너스레를 떨며 당당히 내놓은 소쿠리에 소담스럽게 담긴 메주는 애지중지 사랑받고 잘 자란 자식들 마냥 적당히 노릇노릇하고 얼룩지며 반들반들 윤기가 돌았다. 유치해 마지않던 자식 자랑하는 그 마음도 이제는 너른 아량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 온 정성과 마음 씀의 결정체인 이 으쓱하고 자랑스러운 내 새끼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