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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Dec 27. 2021

Ep. 2 폭식의 원인은 일차원적이지 않다

나의 폭식증이 시작된 계기에 관하여


 폭식의 원인은 일차원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의 폭식증에 대해 충고 혹은 조언을 빙자하여 멋대로 재단한 이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네가 다이어트를 극단적으로 해서 그런 병이 생긴 거야.’라던가, ‘너는 음식으로 도피하는 거야.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지.’라는 무례한 참견들이 있었다. 이들의 말도 부분적으로 맞다. 잘못된 다이어트와 몸에 대한 어긋난 이해가 나의 폭식증을 유발한 원인 중 하나였음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도 나에게 ‘왜 너는 다이어트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하게 되었니?’라던가, ‘네가 음식을 통해 피하고 싶은 문제는 뭐니?’라고 물어본 이는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조차도 스스로에게 이러한 중요한 물음을 건넨 적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폭식증의 전조 증상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나타났다. 마요네즈와 설탕을 듬뿍 넣고 감자를 으깨 만든 감자 샐러드를 미친 듯이 먹다가 체를 해서 한참 토를 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토할 정도로 감자 샐러드를 먹었냐면 고작 중학생 2학년의 나는 다이어트로 먹고 싶은 음식을 극도로 제한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아는 분께 얻어왔다던 그 감자 샐러드를 보는 순간 고삐가 풀려서 미친 듯이 먹었다. 끔찍한 폭식의 시작이었다. 15살 내가 했던 다이어트는 검은콩 다이어트였다. 그때 검은콩을 밥 대신 3시 세끼 종이컵으로 3컵 정도의 분량을 먹었다. 우유를 간간히 곁들여 먹었고 엄마 몰래 인터넷으로 산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었다. 지방이 살로 바뀌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보조제였다.


 그때 나는 160 남짓의 키에 55kg 정도의 정상 체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한 구석이 없는 평범한 아이였고, 내 삶에 대해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내 불행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살을 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잘것없고 예쁘지 않은 내가 성공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한 방법은 TV 속 연예인들처럼, 또 유명 스타들처럼 더 예뻐지고 마른 몸을 가지는 것이라고 어린 15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보통의 체중으로는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 평범한 아이는 자신의 평범함이 충분하지 않은 사랑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범함이 싫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이러한 애정의 결핍과 낮은 자존감은 마르고 완벽한 몸매를 얻는다면 모두 해결될 일이라고 여겼다. 그것이 15살 아이의 다이어트 계기였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왜곡된 것이었다. 부모님의 불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친구 간의 갈등 등의 크고 작은 문제들은 내가 살을 더 빼고 예뻐지면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모두가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더 예뻐지고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싶었기에 굶고 또 굶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이 미성숙한 사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 좋은 대학에 간 뒤에는 성적이 아닌 다른 것들을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집안의 경제적 사정부터 외모, 타인의 특출 난 능력과 재능 등 나는 모든 것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었고 세상에는 눈부시게 멋지고 대단한 이들이 많았다. 나는 늘 스스로를 부족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평범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오리.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했다. 


 살을 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거짓말을 스스로에게 되내었다. 정말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내가 가난한 것도,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도 마르고 예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잘못된 식습관과 다이어트 실패가 반복되었고 폭식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에는 미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워내고 변화를 시도했지만 망가진 식습관에 익숙해진 몸과 입맛은 악순환의 원인이 되었다. 나의 결핍을 다이어트로 채우려고 했고,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음식에 대한 자제력을 잃게 만들었다. 자제력을 잃고 폭식증이 생기면서 살이 급격히 쪘고 다시 극단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 음식으로 도피하는 잘못된 습관이 생기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것을 먹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었다. 그리고 살은 더 찌기 시작했다.


 앞서 Ep 1에서 소개한 문답지의 첫 번째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1.       님의 폭식 증상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그 시기에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당신의 폭식증은 왜 시작되었는지 스스로에 물음을 던져보자.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그때의 나는 음식으로 무엇을 잊고 싶었는지 차근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문제, 친구 문제, 연인 문제. 모든 문제는 사실 타인, 혹은 자신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당신을 그토록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 시기 당신 안에 결핍된 것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자문할 책임이 그대에게 있다. 앞서 말했듯이 폭식증의 원인은 일차원적이지 않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 과거의 나는 왜 그렇게 아팠을까. 왜 음식을 그렇게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조으고 통제하게 만든 것일까. 아무도 건네지 않았던 질문을 이 시간 스스로에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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