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메모나 편지처럼 잡다한 글쓰기를 좋아했었다. 독후감상문이나 동시처럼 거창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필사'라는 단어의 뜻을 모를 때부터 좋은 구절을 따라 쓰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매일 일기를 써서 선물로 주고 밥 먹다 화장지에도 쪽지를 남기는 등 너무나 사소하고 잦아서 그것이 '글쓰기'라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만큼 즐겨했다.
육아와 살림에 치일 대로 치어 아이들이 낮잠 든 틈에 마른 손바닥 석석 비벼 눈물을 훔치다가 어느 날 문득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글다운 글. 남이 봐도 글 같은 글.
다짐하고 작정해서 써내려 간 글은 나의 삶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살림은 끝이 없었고 세 아이 육아는 답이 없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었고 선뜻 도움을 요청할 그릇도 되지 않았다. 혼자 끌어안고 끙끙 대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야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악다구니 쓰며 퍼붓고는 그마저도 금세 자책하고 울며 마음을 혹사시키거나, 어떻게 해서든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뽑혀 나갈 것 같은 두통에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할 때까지 몸을 혹사시키거나. 나는 꽤 오래 그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지 못했고, 그 시간 내내 내 삶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한탄했다.
그러니 나의 글이 서글픔과 한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것이 답답했다. 나에게는 도무지 '긍정'이라고는 없는 걸까. '낙관'이라는 건 없는 걸까.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걸까.
이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옮겨갔다. 대체 나를 어떻게 길렀길래,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길래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이 모양일까.
쓰고 쓰고 쓰다 보면 글 쓰는 실력이 늘 줄 알았는데 지겨운 쳇바퀴였다. 똑같은 원망, 똑같은 미움, 똑같은 답답함, 똑같은 자책. 우울하고 부정적인 과거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쓰는 나조차도 지겨워서 글을 멀리 하기도 해 봤지만, 몇 개월을 쉬고 돌아와도 나의 글은 제자리였다.
꾸역꾸역 써본들 누구에게도 내가 썼다고 고백할 수 없는 글 뿐이었다.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글, 아무도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이 나라는 걸 눈치채지 않았으면 하는 글. 이런 글을 써 봤자 무엇하나.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위로도 없는, 어디에도 쓰잘 데기 없는 똥 같은 글.
이젠 하다 하다 내가 쓰는 글마저 미워하는구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살아온 세월 동안 정말 내 인생에 남길 것은 없는지, 배운 것은 없는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나의 과거가 진짜 지워버리고만 싶은 쓰레기 같은 시간일 뿐인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쓰레기가 맞다면 지금껏 토해낸 글들과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었다. 그러면 순간의 기분이라도 홀가분할 것 같았다.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는 글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별 거 없었다. 이렇게나 우울하고 세상 억울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하고 구질구질했다.
'와, 도대체 나는 무슨 이딴 인생을 산 거야!'
파일을 폴더 채로 휴지통에 넣으며 혼자 혀를 끌끌 찼다.
'젠장, 진짜 존나게 버티면서 살았네.'
그리고 생각했다.
'존버 하나는 기똥차구먼.'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존버.
내 인생을 한 단어로 꿴다면, 어쩌면 '존버'가 아닐까.
그때부터였다. '존버'가 내 강점이라고, 나 진짜 버티는 거 하나는 끝내준다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된 때가. 내가 버티는 걸 잘하니까, 나니까 그 정도로 버틴 거라고, 다른 사람 같았다면 진작에 떨어져 나가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 수 있게 된 때가. 사람들에게 내 지난 시간들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된 때도.
어쩔 수 없어서,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일 뿐이라고 토로해왔지만 알고 보니 지나친 겸손이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안 된다고 밀어붙여 왔는데 알고 보니 과한 채찍이었다. 존버야말로 누구도 부정 못할 내 강점이었다.
여기까지 깨닫고 보니 앞으로 내가 써야 할 글의 방향이 보였다. 얼마 후, 내가 가입해 있는 네이버 카페에서 일 년 동안 글을 연재할 '엄마 작가'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운명 같았다. 아니, 신의 계시 같았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간단히 적어 지원했고 선발되었다. 그리고 1월 말부터 지금까지 매주 글 한 편씩을 써서 올리고 있다. 바로 이 글의 제목, '존버가 강점이라'라는 주제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어느 인디언들의 기도방법처럼, 어쩌면 나의 존버 정신이나 존버가 강점이라는 생각은 한없이 깨지고 무너지던 끝에 얻어낸 정신 승리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은 길에 연하여 열리고 작게라도 점을 찍어 놔야 연결되는 것처럼, 똥 같은 글이라도 계속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도 보인다. 비록 나의 본캐는 여전히 풍전등화처럼 위태롭지만 부캐라도 생생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물론 부캐는 아직 쪼렙이고, 본캐든 부캐든 하릴없이 무너지는 날들도 여전히 있지만.
어렸을 때 빈 종이 가득 점을 찍어놓고 친구와 마주 앉아 무작위로 점을 연결해가며 삼각형을 만들던 놀이가 생각난다. 세 개의 점과 선이 연결되기만 하면 삼각형이라고 본다는 암묵적 룰에 따라 누가 더 많은 세모를 만드는지가 관건이다. 삼각형의 한 각이 178도에 이르는, 그리고 나니 삼각형이라기보다는 평행한 두 선처럼 보이는 도형일지라도 어쨌든 연결만 되어 있다면 통과다.
우리가 하는 일도 비슷하다. 점을 찍어 놔야 어떻게든 연결할 '꺼리'가 생긴다. 여기서 포인트는 점이 먼저 찍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며 점을 찍을 순 없다. 지금 내가 찍을 점이 과거의 어떤 점과 어떻게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미 찍힌 점들을 공들여 하나씩 하나씩 연결할 수 있을 뿐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정삼각형이나 이등변 삼각형처럼 이쁘고 바른 도형이 완성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통과다. 무작위로 흩뿌려놓은 점을 하나로 연결할 수만 있다면야.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는 점을 찍는다. 글을 쓰고 글에 연한 길을 꿈꾼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다 해서 가지 않을 수 없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해서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당신의 점은 무엇이냐고, 어떤 점을 어떻게 찍고 있냐고 묻고 싶지만 입을 떼기에 섣부르다. 아직 나의 짬밥으로는 한참 멀었다. 주제넘으니 한 수 접어, 아니 접을 것도 없이 까놓고 내 상태 먼저 고백한다.
나는 여전히 사소하고 잦게 글을 쓴다.
글로 점을 찍을 수 있어서, 글이 나의 점이 되어 주어서 즐겁고 좋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쏟아낸 오늘의 글. 오늘의 점. 차곡차곡 쌓이고 차근차근 연결되어 나의 길이 되어 주길.